민족주의民族主義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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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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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족주의[民族主義]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전하여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국가의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 통일성을 유지·발전시킬 것을 추구하는 사상원리·정책 및 운동.
1 내셔널리즘의 다양성
국가형성의 방법, 국가의 유지·발전 형태가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내셔널리즘의 사상원리나 운동의 현상 또한 다양하다. 그러므로 내셔널리즘은 국민주의·국가주의·민족주의 등으로 번역되어 각각 용도에 따라 구분·사용되고 있다. 국민주의라고 하는 경우는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면서 국민국가를 형성·유지·발전시키려는 사상원리나 운동을 가리킨다. 한편 부국강병책을 표방하고 국가의 독립성·통일성에 중점을 두어 국가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키는 사상원리나 정책은 국가주의(statism)라 부른다. 또한 자국의 팽창·강대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자민족의 우월성을 주창, 타민족을 억압하려는 식민지주의적·침략주의적인 사상이나 행동을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라 하며, 반대로 지배국이나 지배민족에 대하여 피지배민족이 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자국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사상이나 운동은 민족(해방)주의·민족자결주의라 한다. 이처럼 내셔널리즘의 의미는 다양한데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민주의·민족자결주의·민족해방주의 등은 <건강한 내셔널리즘>, 국가주의·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자국민 및 타민족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잘못된 내셔널리즘>이다.
2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의 형성
국민주의적 내셔널리즘 사상은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 함께 등장하였다. 따라서 17세기 중엽부터 말에 걸쳐 일어난 2개의 시민혁명인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하여 영국에 근대국가의 기초가 확립되면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주의 사상을 최초로 이론화한 것은 근대국가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T. 홉스이다. 그는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 1651)》에서 한 나라의 권력이 분권화(分權化)되면 분쟁이 계속되므로, 하나의 권력을 창설하여 그 권력이 만드는 법률에 따라 정치하고 국민도 그 법률을 따르는 정치구조 즉 법의 지배에 따름으로써 비로소 국가는 안정·번영하며 국민 또한 안심하고 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정치사회가 된다고 하였다. 당시 영국은 국내적으로는 봉건적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국왕권력과 신흥 시민계급을 배경으로 성장한 의회세력 사이에 경합과 분쟁이 계속되어, 국가로서의 통일적인 정책수행이 곤란하였다. 이것은 또한 대외적으로 프랑스·에스파냐·네덜란드·포르투갈 등의 대륙 열강들과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한편 종교문제도 복잡하여 국민적 통일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즉 영국에서는 국왕을 수장(首長)으로 하는 영국국교회가 공인된 종교기관이었으나 국민 중에는 구교도와 신교도들도 많아 그들은 각각 로마·제네바의 지시에 충실하였고, 종종 국왕의 명령에 반항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홉스는 이러한 상황이 내란(혁명)을 야기한다는 위기감을 안고 조속히 분쟁을 수습하여 국민적 통일을 꾀하고 국가의 독립을 안전하게 할 것을 당시의 국민들에게 호소하였는데 이 점에서 홉스는 근대 최초의 내셔널리스트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홉스가 단순히 절대군주의 옹호자, 강대국을 지향하는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스트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그가 정치의 목적을 인간생명의 존중에 두고, 이를 위하여 권력의 창설을 사람들의 동의·계약을 기반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며, 나아가 근대 최초의 자유주의적 국민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홉스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의 유지·존중이며, 인간이 정부도 법률도 없는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계약을 맺어 공통권력(common power)을 창출하고, 그 공통권력을 사람들의 자유와 안전을 위하여 행사하는 대표자·주권자를 인정하였을 때 거기에 정치사회·국가가 성립한다고 하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필요가 없어지고, 국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법률에 의해 보호되므로 자연상태에 방치되는 것 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가 발생할 위험성도 사라져 평화스런 정치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새로운 사회·국가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동의·계약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절대왕정시대와 같은 권위적·강압적 정치는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국민의 의지는 생명의 안전이라는 원리로 통합되므로 봉건사회와 같은 분권적 통치도 부정되어 자유스런 정치사회가 된다. 또한 이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안전에 기반을 둔 근대적 통일국가이므로 외국의 세력들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독립국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홉스는 인류사상 최초의 자유국민주의라는 내셔널리즘 개념을 제시하였고, 홉스와 같은 사회계약론자인 J.J. 루소가 말하는 <조국애>라는 개념도 자유스런 시민의 통합체로서의 정치사회·국가를 사랑하며 유지해간다는 의미였다.
3 국가주의적 내셔널리즘
국가주의 사상은 19세기 전반의 독일 특히 프로이센제국에서 탄생하였다. 당시의 독일은 수백 개의 영방(領邦)국가로 분열하여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근대적 통일국가의 체제를 정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의 충격으로 독일에서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희구하는 소리가 급속히 높아졌다. 그리하여 당시 독일 통일의 맹주로 주목받고 있던 프로이센은 우선 자국의 근대적 개혁을 시도하여 그 일환으로 1811년 베를린대학을 창설하였다. 이 대학의 창설에 진력하고 초대총장이 된 J.G. 피히테는 당시 프랑스군의 점령하에 있었던 독일의 재건을 목표로 1808년 <독일국민에게 고함>을 발표, 독일인만이 전인류의 도덕적 개혁에 공헌할 수 있는 민족임을 주장하고 독일인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또한 이 대학의 2대 총장이 된 G.W.F. 헤겔은 프랑스혁명을 세계사에서 신세계의 시작으로 보고, 이후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정신이 독일로 다가올 것이라 하였으며, 영국 등의 시민사회는 <욕망의 체계>라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공정을 근본으로 하는 관료중심의 국가에서 사람들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고 하였다. 헤겔의 사상에서는 도시국가가 병존하여 국가적 통일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프랑스의 침략을 받았던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통일의 꿈을 실현하려 했던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근대독일에서 국가적 통일을 나타내는 <제국(Reich)>라는 개념과 민족적 통일을 나타내는 <민족·국민(Volk)>이라는 개념이 독일민족의 표어처럼 되었다. 이러한 관념이 특히 나치스독일시대에 이르러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세계지배를 정당화하는 광신적인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낳는 사상적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점은 일본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제 2 차세계대전 이전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시키려 했던 초국가주의의 발현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권존중과 자유의 확대를 기초로 국민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국가에서 국가주의나 파시즘이 등장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의 사상계보에 속하는 경우는 독일이나 일본의 국가주의로 이것은 개인의 자유·자립보다도 특히 민족관념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 점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이러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선진민주주의 나라로 불리는 국가들에서도 나타난다. 오늘날에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에 도달한 국가가 후진국을 수탈·억압하는 정책으로 보는 레닌의 정의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넓은 뜻으로 보아 다른 국민과 민족·인종을 지배·억압하는 것을 제국주의라고 한다면, 제국주의는 그리스·로마시대 이래 오늘날까지 역사상 줄곧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근대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열강들의 정치적·경제적 경쟁이 치열해진 이후 제국주의적 관념과 경쟁이 특히 현저해졌다. 선진자본주의 열강은 이미 16세기 중엽부터 <백인의 채무>, <그리스도교에 의한 미개인 교화>라는 미명 아래 아시아·아프리카를 비롯, 중동 및 근동지역, 라틴아메리카 등의 여러 지역을 차례로 식민지화하며 이들 행위를 <아리안인종의 우월성>이란 민족의 관념에 의하여 정당화해 왔다. 이러한 무단주의적(武斷主義的)인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는 영국에서는 보어전쟁(1899∼1902)을 계기로 자본수출 등에 의하여 표면적으로는 평화적인 정책으로 전환되었다. 반면 독일과 일본은 제 2 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타민족을 지배하는, 민족주의의 탈을 쓴 제국주의적인 무단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5 민족(자결)주의
피지배·피압박민족의 독립을 부르짖는 운동은 근대에 와서 민족자결주의로 주장되고, 각지에서 민족해방투쟁이 전개되었으나 제국주의 열강의 억압에 의해 민족의 독립은 좀처럼 실현이 어려웠다. 제 1 차세계대전 후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던 동유럽의 몇몇 나라들이 민족독립을 쟁취하였다. 민족해방운동·민족독립운동에 즈음하여서는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를 주창하고, 인권보장·민주정치 수립의 관점에서 민족문제를 중시한 마르크스주의가 피압박민족에 커다란 이론적 영향을 끼쳤다. 이제까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하에 있던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종속국의 대부분이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것은 제 2 차세계대전 후의 일이다. 이 경우에도 전후 25년 정도의 세월이 소요되었으며, 그 중 알제리전쟁·인도차이나전쟁·쿠바혁명·베트남전쟁 등은 민족해방투쟁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 신흥독립국의 대다수가 아직까지도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충분히 확립하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선진 여러 나라들이 자본주의 개발도상국에 각종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방법이나 결과가 신흥독립국의 권익을 보장한다는 것이라기 보다 자국의 정치적 권리·경제적 이익을 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새로운 지배방식에 대하여 신흥독립국은 아시아·아프리카회의 등으로 결집하여 국가간에 주권의 존중과 평등호혜를 주장하거나, 신국제경제질서(NIEO)의 제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진국들이 후진·개발도상국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새로운 정책이나 현상을 신식민지주의로 비판하고 자국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자원내셔널리즘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 신흥독립국가들은 자기들이 오랫동안 억압·지배받아았던 역사적 경험에서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적 전쟁을 반대하고 동서 양진영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제 3 세계를 형성하고 평화공존을 주창, 오늘날 국제연합 속에서 국제평화 유지를 위한 유력한 정치세력이 되었다. 현대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