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분쟁들

 1  국제분쟁들-1
 2  국제분쟁들-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국제분쟁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국제분쟁들
네팔분쟁
72 이래 비렌드라, 전제왕정의 군주로 군림; 80년대 시작된 민주화 학생운동이 가열; 90 비렌드라,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절대왕정을 입헌군주제로 전환하고 다당제 도입; 이후 정국은 의회 중심의 민주화세력과 왕권 강화를 추구하는 왕실세력간의 알력 지속; 96 모택동주의를 신봉하는 좌익세력은 왕정에 대해 권력 분점을 요구하며인민전쟁을 선포; 96 무장봉기 이래 좌익세력은 세력을 확장하면서 네팔 국토의 1/4을 사실상 장악, 독자적인 행정기구 운영; 고립된 산악지역의 농민들은 반군에 대해 호의적인 경향; 경찰군과 반군간의 교전으로 매년 300명 내외의 사망자 발생; 01년부터 네팔정부는 반군세력 척결을 위해 정규군 투입 시작
터키내 쿠르드족 분리운동
쿠르드족은 이라크, 터키, 이란 등지에서 분리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무장투쟁을 벌여옴. 1922년 최초의 봉기이래 30년과 32년 반란을 일으킴. 2차 대전이후 터키에서 51년과 65~68년에, 이라크에서 58년과 70년 및 78년에, 이란에서 50~53년과 70년 및 79년에 무장반란이 지속됨. 84년부터는 쿠르드노동자당(PKK) 중심 무장투쟁이 전개됨. 해당 국가들은 정규군을 동원, 쿠르드족게릴라를 공격함. 터키군은 적극적으로 PKK를 공략, 교전이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98년 5월에는 터키가 이라크내 PKK 기지를 공습하고 10월 시리아에 PKK 지원중지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낸바 있음. 1999년 2월 PKK반군지도자 오잘란이 체포되고 쿠르드족 항의 시위와 유럽 국가내 터키 대사관 난입 발생. 터키군의 총공세와 오잘란의 항복 권유로 쿠르드족 반군의 대다수가 이란, 이라크 거점으로 이동하여 반군활동 지속. PKK가 거점을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쿠르드족 반군과 거점 확보를 위한 충돌이 자주 발생함. 2002년, 터키와 PKK간의 충돌이 지속되나 강도는 전년도에 비해 줄어듬. 터키는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경고.
북아일랜드 분리운동
동 분쟁은 영국과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북아일랜드 구교도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임.1921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북아일랜드 지역은 여전히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음. 이는 영국에 잔류를 원하는 신교도가 북아일랜드 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향후 독립을 희망하는 구교도간의 갈등의 원인이 됨. 68년 구교도에 대한 차별정책에 항의하는 민족운동이 시작되고, 69년 IRA가 결성됨에 따라 본격적인 유혈 폭력운동이 전개됨. 72년 영국이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접수하자 구교도들의 항의가 거세졌고 테러가 시작됨.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북아일랜드 사태 해결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97.7. 휴전 협정에 성공함. 이를 시금석으로 98.4. 극적으로 평화협정이 타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99년 12.12 초당적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구성됨. 그러나 IRA의 무장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IRA의 파생 조직에 의한 테러가 재연되자 영국정부는 00년 2.12.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직접 통치에 나섬. 이로써 평화적 해결이 임박하였던 동분쟁은 또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였고 새로운 협상이 재개됨. IRA는 2.15. 국제무장해제위원회와의 접촉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사태가 악화일로에 접어듬. 그러나, 5.6. IRA가 무기사용 중지 및 사찰 허용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5.27. 신교파와 구교파가 공동자치정부에 복귀하기로 결정함으로써 5.29. 자치정부의 통치권이 복원됨. 이후 IRA의 약속 불이행, 정파간의 첨예한 대립이 반복되었고, 01.7.1. 트림블 공동자치정부 수석장관이 사임을 선언, 북아일랜드 의회의 기능이 정지될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함. 영국정부와 아일랜드 정부는 수차례 회합을 가져 난국타개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IRA의 무장해제 보장, 경찰개혁 등에 대한 합의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립과 반목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국면에 처함
소말리아 내전
1969년 이후 집권한 Barre 군사정권 타도를 위해 결성된 통일소말리아회의(USC)가 1991년 쿠테타 성공후, 정권 쟁탈을 위해 3대 무장군벌인 아이디드, 모하메드( Mahdi파), 아토 등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내전. 1991년 가뭄에 의해 국민의 과반수가 넘는 420만명이 기아에 직면하자, 1992년 4월 유엔은 소말리아활동(UNOSMO) 결의하고 2차에 걸쳐 35300명을 파견. 당초 대량 아사를 막는 인도적인 개입에서 시작되었으나, 군벌간 무력 투쟁 격화와 PKO 군에 대한 공격 등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국군이 군사작전화. 유엔은 UNSOM2의 활동을 실패라고 규정, 1995년 3월 2일 철수 완료. 1995년 5월 아이디드가 대통령 취임 및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으나 1996년 8월 사망. 그후 반군간에 정전을 모색하는 회의가 수차례 개최되었으나 매회 각 군벌간의 이해 상충으로 결렬됨. 3대 군벌간에는 정전이 합의되었으나, 군소 군벌에 의한 전투는 계속되고 있음. 99년 들어와 상황은 악화되었으며, 2000.2월 현재 남부지역 중심 심한 충돌 지속 2000.8월 과도의회에서 핫산을 대통령으로 선출 그러나 북부 소말리랜드와 반군 아이디드파는 신정부를 인정하지 않음.
항쟁과 반란의 차이
내생각의 항쟁은 정부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수정을 요구하는 무력시위이고 반란은 단순히 현 정권을 내몰고 자신이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하는 무력행위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항쟁은 아래서부터의 운동이라면 반란은 어느정도 권력이 있는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일으키는 것이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