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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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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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산업화의 폐해
들어가며
경제 개발은 정당성이 취약한 박정희 정권에게 권력 유지를 위한 과제이자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중요한 명분이었다. 516 쿠데타 당시 쿠데타의 중심이었던 군부 세력은 군인이 국가를 구원할 유일한 세력이라는 일종의 엘리트적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은 집권기간 내내 그동안 한국 사회에 쌓여온 경제 문제들과 변화하는 국내적세계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은 박정희 정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가장 첨예한 화두가 되었다. 한쪽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의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것이 초래하거나 심화시킨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상대편이 말하는 ‘부수적인 것’에 치중한 나머지 박정희 정권의 제 정책이 남긴 성과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과 그 성찰에 대한 반론의 제기가 부족했다.
이 글의 주제인 ‘산업화의 폐해’는 후자 쪽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면이 있다. 위와 같은 과오를 경계하고자 이 글에서는 박정희 정권 경제 정책의 결과-정확히 박정희 정권 경제정책의 영향이 한국 경제에 불러일으킨 변화-라고 보여지는 몇 가지 경제적 문제점들이 박정희 정권 시기에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왔는지에 초점을 마치고자 한다.
종속 경제
한국 경제의 미국 종속이라는 문제는 비단 박정희 정권 하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전후 한국 경제는 미국의 원조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0년대 전후 복구를 거쳐 경공업 위주의 산업화가 진행되었지만, 이는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일본인 귀속재산의 부하와 미국의 원조를 통해 1950년대 이미 15개 대기업이 있어서, 어느 정도 수입 대체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한국 경제는 부패로 찌들어 있었으며, 대기업들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좌지우지되었다. 또한 이승만 정권의 정책 목표는 통일과 반일에 있었고, 경제 개발은 부차적이었다. 장면 정권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우는 등 경제 개발을 위한 나름대로의 의지와 비젼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만한 추진력이 부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제일의 목표로 내세웠다.
초기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에는 미국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다. 당시 미국의 대한정책은 일정한 변화를 보인다. 미국은 50년대 중반 경기 후퇴와 국제수지약화로 인해 더 이상 제3세계에 원조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의 대한 원조 역시 기존의 원료와 소비재 공급에서 공장 건설과 발전 산업의 지원으로 전환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자립이라는 미국의 대한 정책의 기조에 따라 제1차 계획을 작성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1963년 미국이 요구한 재정 안정계획의 실시를 받아들였다. 이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본 자본의 진출 역시 미국의 영향이 크다. 반일을 정권 목표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은 동아시아에서 소련과 중국, 북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했던 미국에게는 불만이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은근히 바랬다.
일본 자본의 한국 진출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급물살을 탄다. 박정희 정권 시기 산업화의 본격적인 도약은 국제적인 상황변화를 통한 외자의 대규모 도입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일 협정의 체결로 인한 일본 자본의 도입이었다. 산업화에 자본 유치라는 한국 정부의 경제적 이해와 잉여 자본의 해외 유출이 필요했던 일본의 경제적 필요, 그리고 동북아에서의 지역 안보 협력 체제의 구축과 대한 원조 삭감의 필요라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려 성사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외향화에 결정저긴 계기가 되었다. 즉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은 외자와 외국 정부의 정책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조가 중심을 이루던 미국의 대한 정책이 차관 중심으로 바뀌고, 미국과 일본의 자본 수출이 확대되고, 직접 투자가 늘어나면서 자본 순환의 출발점에 놓은 화폐자본의 조달에서 대외 의존을 특질로 하는 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오늘날의 종속 경제의 문제가 비롯되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면서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 수단의 수입은 물론원자재 및 핵심적 부품의 수입을 통해 국내 값싼 임금을 이용하여 가공조립한 다음, 완제품을 수출하거나 일부 부품을 생산, 수출하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전체저그로 ‘국제적 하청 생산’의 틀에 얽매이게 되었고, 이는 이후 한국 경제 발전에 발목을 잡는 큰 이유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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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호,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 2000, 책세상
김영명, 『고쳐쓴 한국 현대 정치사』, 1999, 을유문화사
구해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2002, 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