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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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들어가며..
지난 1000년 동안의 일본 정치 지도자 중 개화기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아사히신문이 독자 78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 밖에도 2005년 12월 마이니치 신문에서는 오늘날 총리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상으로 료마가 1위로 선정되었으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 중에서도 2위에 뽑히는 등 료마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위대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카모토 료마는 에도시대의 무사로 대정봉환을 주도해 실질적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메이지유신의 영웅인 료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먼저 메이지유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위인 1위~10위 (2위에 사카모토료마)
Ⅰ 메이지유신
1. 정의
일본 메이지왕 때 막번체제를 무너뜨리고 왕정복고를 이룩한 변혁과정으로 일본에서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로 전환된 사건이며, 근대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된 개혁을 의미함.
2. 배경
19세기 일본은 미국의 개혁 요구로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1858년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조약을 칙허없이 처리한 막부의 독단적 처사로 이후 반막부세력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을 겼었다.
3. 결과
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의 대립의 결과로 700여 년간 이어져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메이지정부는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서양 근대국가를 모델로 관주도의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중앙집권적 근대적 통일국가 형성에 기여하였다.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 분야에 실현하게 되었고 구미에 대한 굴종적 태도와 달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 침략적 태도로 일변하며 1894년 청일전쟁 도발, 1904년 러일전쟁도발, 그리고 한국을 식민지배 하고자 하였다.
봉건체제의 막부패망 - 국왕중심의 중앙집권체제
경제 - 도지제도, 조세제도 개혁, 자본주의 성립
참고문헌
참고자료
※료마의 인물평
「료마는 토사 제일의 영웅으로 사이고를 빈틈없게 만든 남자였다.」 -오쿠보 이치오
「천하의 지사라 불리는 사람과는 대부분 알고 지내왔지만, 도량이 큰 것으로 료마 이상의 인물은 없었다.」 -사이고 다카모리
「괘씸할 정도로 호방하다. 그것이 료마의 특질로, 도저히 관리로 근무할 수 없는 남자였다.」 -이타가키 다이스케
「료마는 나를 죽이러 온 녀석이지만, 상당한 인물이지. 그때 나는 웃어 넘겼지만 소동이 끝나고 왠지 모르게 침범하기 어려운 위엄과 권위가 있는 멋진 남자였어.」 -가쓰 카이슈
※ 료마 명언
인생은 흔히 일종의 연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이 연극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연극의 무대는 타인이 설치해 주는 반면
인생의 무대는 자신이 직접 설치해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무대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결코, 타인이 무대를 만들어 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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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다.
남자는 일단 뜻을 세웠으면
그 뜻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만을 생각하고 나아가야 하며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좌절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목적이 성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목적으로 가는 도중에서 죽어야만 한다.
생(生)과 사(死)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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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을 뿐
다시 태어난 일본에서 영달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런 심경이 아니고서는 대사업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
내가 평소 그런 심경으로 있었기 때문에
일개 낭사에 지나지 않는 내 의견을 세상 사람들이 경청해 준 것이다.
또한 이렇게 큰 일을 성취한 것도 그 덕분이다.
일이란 것은 전부 해 버리면 안된다.
8할까지면 족하다. 그러나 8할까지가 어려운 것이다.
나머지 2할은 누구라도 다 할 수가 있다.
그 2할은 남에게 할 수 있도록 하여 완성의 공을 양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사업을 이룩할 수 없다.
(당시 대정봉환을 이뤄내고 료마가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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