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시대六朝時代의 윤리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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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윤리사상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도덕이 완전히 무너지고 천자를 살해하는 난신, 적자들이 많았다. 사회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심이 염세적 사상으로 젖어 들게 되었다. 따라서 불교가 이러한 경향을 타고 점점 깊숙이 보급되었다. 남북조 시대에는 불교가 왕왕 군주의 존경과 신임을 받아 정치적인 세력을 얻기도 하였다. 남천축 인도의 남쪽
(南天竺)의 명승, 보리달마가 중국에 와서 선종을 전한 것이 이시기이다.
이 당시 불교와 충돌하기도 하고 교섭하기도 하면서 근근히 그 세력을 유지해 온 것이 노장의 학파였다. 노장학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유교세력은 불교와 도교에 비하여 매우 쇠약해졌지만 그 명백은 유지되어 일관되게 중국사상의 주류적 위치를 잃지 않았다. 아마도 육조시대의 사상은 요컨대 유교, 도교, 불교였다고 할 수 있다.
1. 육조시대의 유교
◎ 유교시대의 유학자
가. 부현(傅玄)
부현은 ‘믿음’(信)을 매우 중히 여겼다. 즉 그는 “화중에 믿지 않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믿지 않으면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친해지는 방법을 모르면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물며 천하야 어떠하겠느냐” 라고 말했다. 아울러 단언하기를 믿음이 없으면 군신, 부자, 부부, 형제, 붕우의 사이에서도 인륜이 없어지고 말 것이라 하였다.
나. 도연명(도연명)
원래 유교를 근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염세적인 일면이 있었다. 그의 염세적 인생관은 종종 그의 시속에서 엿보인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인생이란 기우(寄寓)에 불과한 것으로 마치 시장의 소음과도 같이 하나도 그 근본 뿌리란 없는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쾌락을 구할 뿐인 것이다. 도연명은 술을 좋아해서 그로 인하여 모든 걱정을 털어버리고 괴짜시인들과 같이 어울렸다. 이러한 인생관은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저서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도 이상적 사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다. 안지추(顔之推)
노장을 배척하여 노장의 책을 모두 성(性)을 기르며 물질로써 자신의 번거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는 무리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교는 크게 믿어 불서는 내전(內典)이며, 유교서는 외전(外典)이라 하였다. 내외 양전은 본래 일체가 되어 깊고 얇음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