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그많은규칙은 누가다정했을까출애굽기31장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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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말씀그많은규칙은 누가다정했을까출애굽기31장18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 많은 규칙은 누가 다 정했을까 출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언약의 말씀을 새긴 증거판 두 개를 주셨습니다. 그 돌판 위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손수 쓰신 것입니다.
‘그 많은 규칙은 누가 다 정했을까’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혹시 ‘청매’ 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새나’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청매’는 ‘청소년매일성경’의 줄임말이고 ‘새나’는 ‘새벽나라’의 줄임말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익숙한 QT책의 이름입니다. 저도 중고등부 시절, 매일 QT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터라 날마다 QT를 붙잡고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저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것은 전혀 은혜롭지 않은 본문이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정결예법이나, 민수기에 나오는 호구조사 같은 부분들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도대체 스불론 지파의 군대가 오만칠천사백명이라는 본문에서 어떤 은혜를 받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저는 큰 죄책감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가끔 QT를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가 읽어드린 출애굽기 31장과 그 앞쪽에는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20장에 나오는 십계명과 관련된 본문을 지나면 21장부터 31장까지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규정들이 나열됩니다. 한 집안의 종이 영구적으로 노예계약을 맺을 때는 문설주에 귀를 대고 구멍을 뚫어버리라는 내용이나 짐승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은 죽이라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들을 멸망시켜주겠다는 약속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특별히 제물로 받고 싶은 보석명단도 기록되어있고 등잔대는 순금으로 만들어야 하고 테를 두를 때도 무조건 금으로 둘러야 하고 가위와 그릇까지 순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자그대로의 ‘황금만능주의’정신에 입각한 회막제작규정조약도 있습니다. 그 제작규정이 얼마나 디테일한지 널빤지의 개수와 수치는 물론이고 그 회막 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제사장들의 거룩한 옷에 쓰이는 실의 색까지 정해져있습니다. 누가 이런 규칙을 다 정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꼼꼼한 분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꼼꼼하고 섬세하신 분이 누구신지. 성경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돌판 위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손수 쓰신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찾아 보니 ‘by the finger of God’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라는 뜻이죠.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봐도 ‘손가락’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정말. 여호와께서 두개의 돌판에 이 디테일의 극을 보여주는 규정들을 손수 쓰신 것일까요?
기원전 721년 경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사르곤2세에 의해 정복당합니다. 정복당한 북 이스라엘은 강제 이주라는 혼혈정책 덕분에 이방인들과 피가 섞이게 됩니다. 이후, 약 130년정도 시간이 지나면 남유다도 신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전문종교직에 종사하던 제사장들도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버립니다. 국가가 망해버린 것도 큰 문제이지만 제사장들에게는, 다른 이방 신들에게 본인들이 섬기는 야웨가 패배했다는 사실 또한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나라도 잃고 종교적인 정체성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직업적인 특권까지 사라져버린 시점에서 그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줄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붓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들의 특권이자 의무였던 제의규정을 정말 자세하고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희망과 꿈을 잃어버린 자신들은 물론 더불어 히브리 민중들에게도 상징적인 ‘어떤것’을 내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격하게 구별된 제의의식을 통해 다른 민족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제의와 관련된 신학적인 내용들을 손보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징징거리던 히브리인들에게, 메추라기 고기와 만나만으로도 충족했던 그들에게 휘황찬란한 보석이나 디테일한 성막건출기술과 재료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시대적으로나 상황적으로나 어울리지 않는 부담스러운 규정들이 출애굽 전승에 배치된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적, 종교적 정통성을 회복하고자 붙잡은 것이 복잡하고 유난스러운 종교적 규칙들이었습니다. 성막을 화려하게 만들고, 제사장들의 의복을 꾸미고, 수행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종교규정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굉장히 비본질적인 부분을 붙잡은 것이죠. 그럼 어떤 것이 본질적인 것일까요.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전승은, 바로 출애굽사건 그 자체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출애굽 사건은 그 당시 역사적인 정황에서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억눌리고 가난한 히브리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초강대국인 이집트의 강제노역에서 민족들을 구원하신 야웨의 그 모습은 그 당시 사회적으로 억눌리던 다른 민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실, 히브리라는 단어자체가 그들이 혈연공동체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비루, 아피루라고 불렸던 ‘히브리’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민족개념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적으로 피지배계층을 뜻하던 단어입니다. 사회계층적인 용어였던 셈이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히브리’인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해방의 손을 펼치신 이가 야웨였고 그 해방의 기억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이 히브리 민족의 기원이자 야웨종교의 시작이었습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을 공동체로 묶어준 정신이 해방의 정신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약한 자들의 편에 계신 야웨가 바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적인 전승입니다. 억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선사하는 것이 그 당시 야웨종교의 본질이었고 기독교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리얼하게 이 땅위에 실현시킨 예수의 흔적을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낮은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그 분의 삶이었습니다. 못된 종교지도자들과 불평등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억눌리고 헐떡거렸던 이들에게 해방을 주기 위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잃어버린 제사장들은 이러한 본질적인 부분을 잊은 채, 난해한 규정들을 재생산 했습니다. 덕분에 사회적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은 더욱 종교생활과 유리된 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재생산된 규정들이 종교의 본질적인 핵심으로 둔갑하기까지 했습니다.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이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색깔을 잃어버리게 만든 제사장들의 잘못된 판단이 지금 우리에게 똑같이 반복된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한국교회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망국의 아픔을 간직한 채, 고민하는 제사장들의 상황과 지금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거국적인 안티 기독교 세력이 양성되고 잊혀질만하면 부끄러운 대형스캔들이 터지고, 돈과 명예에 눈이 먼 목회자들 덕분에 빈사상태에 빠진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나라와 종교성을 잃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상황과 동병상련의 처지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오히려 우리의 현실이 더 힘들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한국교회위기론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던 표현이라 진부하기까지 합니다. 몰락 직전의 우리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작금의 한국교회는 무엇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혹시, 본질이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제부터 일 년에 한 두 번씩 경치 좋은 곳에 놀러가 강렬한 사운드에 두 손 들고 눈물 흘리며 죄를 고백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불리게 되어버린 것입니까. 언제부터 순진한 아이들 모아놓고 말을 빨리하라고 닦달하는 것이 은사의 척도가 되어버린 것입니까. 인간의 죄의식을 건드려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고 교회에 충성하고 목사에게 순종하게 하는 것이 성화입니까. 감사헌금을 내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어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이 정말 은혜입니까. 거대한 성전과 화려한 강대상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매일 새벽예배에 나가고 수요예배, 철야예배를 빠지지 않는 것이 신앙의 성숙입니까. 자기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본인의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본질입니까.
여러분, 사역하시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신 적 없으십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역입니까. 정말 애굽의 억압에서 억눌리던 노예들을 해방시켜주신 능력의 하나님을 위한 사역입니까. 종교로부터까지 배척받고 유리되었던 갈릴리의 가난한 인민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을 위한 사역입니까. 제사장들이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본질적인 것으로 둔갑해 버린 ‘그것’들이 우리의 눈을 가린 것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기존의 성서해석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부분을 이야기했습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 때문에 불편하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흔들립니까. 고작 역사적인 정황으로 성서를 약간 비평한 것 때문에 우리들의 믿음이 흔들릴 만큼 연약한 믿음이었습니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정말 잘못된 행동입니까. 우리들은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목사님의 말씀은 절대 순종해야 하며 의문을 가져서도 안되는 거룩한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대로 사역의 자리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들이 이 땅위에 완성시켜야 하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들이 제사장들의 몸부림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전통과 계승을 깡그리 무시하고 폐기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명감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수님이 이룩하시려고 했던 그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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