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hwp1. 서 론
우리말로 사실주의(寫實主義)로 얘기되는 리얼리즘(realism)은 어찌 보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개념이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가장 얘기하기 힘든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실주의’로 번역되는 우리말에서 ‘사실(寫實)’을 ‘사실(事實)’로 오해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사실(寫實)’이란 말을 있는 그대로 실재를 베껴놓은 행태쯤으로 여기는 것에서 오는 혼돈일 수 있다. 물론, 실재를 베껴놓은 예술 형식이라 이해하는 것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칫 사실주의의 정신을 배제한 부분적인 이해일 수 있다.
오늘날까지 한국 연극에서 주류는 여전히 사실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왜 그것들을 사실주의라 불러왔는가. 혹시 우리는 사실주의의 본고장인 유럽과는 다른 개념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인 뒤 재생산해내고 또 다시 그 잣대로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사실주의의 개념이 오해라면, 본국에서의 사실주의란 어떠한 것이었으며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덧붙여, 때로 사실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자연주의란 어떠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되짚어 갈 때,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사실주의의 본질은 한결 같으면서도 늘 변화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에, 다시금 사실주의의 개념과 정의, 그리고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사실주의의 변화란 무엇인지 논의해보겠다.
2. 사실주의의 개념과 정의
사실주의(realism)의 근간이 되는 개념은 ‘reality’이다. ‘reality란 무엇인가, 또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것인가가 사실주의의 주된 문제라 볼 수 있다. 본디 ‘reality는 철학과 신학에서 주로 다뤄온 영역이었다. 그것은 현상과 실체를 구분하는 플라토니즘의 소산이며 중세에 끊임없이 논쟁을 벌여왔던 주제였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선, 정의, 진리 같은 일반 개념은 그것이 구현되는 특정한 대상과는 관계없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겼고 ‘reality는 곧 관념이었다. 이에 반해 유명론자(唯名論, nominalism)들은 reality는 개념이 아니라 실재라고 여겼다. 19세기에 이것이 다시 문화예술 분야에 사용되었을 때에는 유명론자들의 대를 이어 실증주의적이고 유물론적인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관념과 무관한 실재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19세기에 리얼리즘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26년 프랑스에 발행된 란 잡지에서 였다.
이란 용어가 특정한 예술 운동 혹 예술 전통과 관련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55년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기존의 작품들과의 차이점을 가리키기 위해 전시장 문 위에 이란 문구를 게시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와 고전주의에 반대하며 화가들이 오직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그릴 뿐 결코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것을 그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리얼리즘(이하 사실주의)에서 reality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핵심, 즉 아리스토텔레스 가 거론한 ‘모방(mimesis)을 기본 양식으로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르네 웰렉은 사실주의란 ‘당대 사회적 현실의 객관적인 묘사’ 르네 웰렉,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 , 이재호 외 공역, 을유문화사, 1990
라고 간략히 정의했는데, 여기에 사실주의의 기본 개념이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19세기에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사실주의는 왜 ‘당대 사회적 현실’을 소재로 삼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는가.
3.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등장배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