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된 자아와 그 통합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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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자아와 그 통합과정
앞부분에서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즉 각각 한 번만 태어날 필요가 있는 낙관주의적 성품의 방식과,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 번 태어나야만 하는 고뇌하는 성품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다. 이 성품 중에 두 번 태어난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부조화스럽거나 이질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즉 불완전하게 통일된 도덕적이고 지적인 기질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하나의 경향이, 그리고 때로는 다른 경향이 우세하게 되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왔다갔다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질적인 성격은 유전의 결과로 설명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질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든지 간에, 우리가 정신병적 기질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되든지 간에, 성격의 정상적인 발달은 주로 내적 자아를 올바르게 하고 통일시키는 데 있다. 그러나 달성된 그 통합이 반드시 종교적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종교를 발견하는 것은 단지 내적 통일을 얻을 수 있는 많은 방법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또다른 방법은 정통교리의 신봉으로부터 배반으로의 변화와 같은 ‘역회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의학에서는 사람이 유체적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는 방법에는 점진적 방법인 라이시스(lysis)와 급진적 방법인 크라이시스(crisis)가 있다고 했는데, 내적 통일이 일어나는 영적 영역에서도 그와 같은 방법이 있다. 보통의 회심은 크라이시스를 보여주지만 점진적인 통합의 예로 톨스토이와 버니언의 예가 나온다.
회심
흔히 회심하는 것은 종교적 실재들을 더욱 확고하게 붙잡은 결과, 지금까지 분리되고 의식적으로 빗나간 방향으로 나아갔던 열등하고 불행했던 자아가 통합되고 의식적으로 올바르고 우월하고 행복한 존재로 변모해가는, 점진적 또는 갑작스러운 과정을 직접적인 신의 작용이 그러한 도덕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서도 성격의 변화가 일어날 때도 있다. 책의 예에서와 같이 대통령이 낚시를 간다던가 할 때, 자신의 모습을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 목표에서 다른 목표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일반적으로 변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다르게 한 목표가 매우 안정적으로 형성되었고 그의 삶에서 이전의 경쟁자를 몰아낼 경우에 그 현상을 ‘변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변화가 종교적일 때 우리는 그것을 회심이라고 한다. 특히 그 변화가 위기에 의해서, 혹은 갑자기 이루어진다면 더욱 그렇게 부를 것이다. 한 사람의 의식안에 존재하는, 그가 이제까지 헌신해오고 영향을 받은 관념집단을 그의 개인 에너지의 습관적 중심(the habitual centre of his personal energy)라고 부르자. 이것과 연관하여 회심이라는 것은 이전에 그의 의식 주변부에 있던 종교적 관념들이 이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회심되지 않고 도저히 회심될 수도 없다. 즉, 종교적 관념은 그들에게 정신적 에너지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대한 억제의 믿음들, 이를테면 염세적이고 유물론적인 믿음들은 종교적 관념의 기능을 확장시키려는 자연적 경향을 억제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억제, 금지는 극복되지 않으며, 결국 최후까지도 믿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그들의 개인적 에너지는 종교적 중심에 다다르지 못하여 영원히 비활동적으로 된다. 그들과 다르게 감각적 범주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면에서 마비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정신적 사건이 있다. 그것들은 회심의 과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정신적 결과가 성취될 수 있는 것에서 한가지는 의지에 의한 유형(volitional type)이고 다른 한가지는 자포자기에 의한 유형(type by self-surrender)이다. 의지에 의한 유형에서 회심은 흔히 점진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습관을 조금씩 구축해나가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지에 의한 유형도 많지만 그보다 자포자기에 의한 유형이 좀 더 흥미롭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포자기의 유형에서는 ‘잠재의식적(subconscious) 효력이 풍부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의 유형 사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왜 회심에서 마지막 순간에 자포자기가 불가피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보자면, 우선 회심을 하려는 예비자들의 마음속에는 처음부터 두 가지 사실이 내재해 있다. 한가지는 현재의 불완전함이나 잘못됨, 그가 열렬히 피하고 싶어하는 ‘죄’이고 또 다른 사실은 그가 포착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이상이다. 그래서 회심한다는 것은 “의(義)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다.”라고 한다. 또 성냄, 근심 걱정, 공포, 좌절 또는 그 외 바람직하지 않은 애착을 제거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반대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멈추게 해야하는 것 때문에 너무 지쳐 있으므로 그것을 그치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일시적 탈진 상태는 종종 회심 위기의 한 부분을 형성한다고 한다.
갑작스런 회심의 경험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에게 생생하고 확실하게 기억된다.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경험을 한 것이 수동적으로 구경하는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종교적인 면에서 성령은 극적인 순간에 기적의 방식으로 임하여서 그 순간에 절대적으로 새로운 본성이 우리에게 들어와 그 신성의 본질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회심은 순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가 이 회심을 종교적 관점, 혹은 조금의 관심도 없이 전적으로 자연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논한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인간의 가장 진기한 특성 가운데 하나로 기록해야할 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눈에 띄는 인간 정신의 단위는 하나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실질적 단위는 더욱 개연적으로 총체적 정신상태, 의식의 물결 전체 또는 언제나 사고에 나타나는 대상들의 영역이라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결 영역의 윤곽을 명확하게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의식의 영역에서 그것의 한계선을 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잠재의식적인 부분을 바라볼 수 있다. 자동증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의 잠재의식적 부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일반적 의식 안으로 ‘분출’되어 들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이다. 즉 자신이 말할 때에도 주체인 자신은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예로 최면 이후의 암시를 들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회심의 많은 특성들은 다른 자동증과 함께 분류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회심은 능동적 잠재적 자아(active subliminal self)의 사로잡힘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신앙부흥회에서 회심 희망자들이 어떤 뚜렷한 것을 경험하지 못하여 실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발적’인 하위등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두드러진 변화를 한 것과는 달리 그들은 ‘수동적’ 하위등급에 속하여 눈에 보이는 변화가 적다고 한다. 그러므로 앞의 내용과 관련지어 보았을 때, 발달된 잠재의식적 자아와 새기 쉽고 침투하기 쉬운 한계영역의 주체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즉각적인 방법으로 회심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회심을 한 사람들이 수많은 재타락과 회심 전 상태로의 환원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이 모두 다 ‘히스테리 현상’이라고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장은 회심했을 때에, 인격의 특성과 특질이 더욱 높은 수준으로 변화한다는 심각한 견해를 간과하고 있다. 사람들의 재타락은 종교적 신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종교적 열정이 감소되는 변화였을 뿐이었다. 특히 주목해야할 점은 이러한 수많은 재타락에도 불구하고 회심의 효력은 매우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수반한다고 한다. 즉, 회심을 겪은 사람들은 종교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열정은 조금 사그러들지 모르나 스스로를 종교적 삶과 동일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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