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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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장자의 소요
1.인물 소개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 본명은 주(周).중국전국 시대송(宋)나라 몽(蒙;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 저명한 중국 철학자로제자백가중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후세에 노자와 함께 부를 때 노장(老莊)이라 부른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부르기도 하며,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부른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선인이 바로 남화노선(장자)이다. 장자는 만물 일원론을 주창하였다.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잠을 깨니 내가 꿈을 꾸고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고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장자는 이처럼 상식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고 유학자들이 말하는 도덕적 가르침 따위는 하잘 것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노자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으로 돌아갈 것과 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생애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일찍이 몽(蒙)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으나, 생활은 매우 가난했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편에 따르면, 초나라 위왕(威王)이 사람을 보내 정치를 보좌해 주길 청했으나, 장자는 거절하였다. 혜자(惠子)와 교우했다.
2. 소요(내용)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장자 사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 당시 장자가 제자백가들을 일컫는 비유이다. 교조에 묶인 굽은 선비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아 그들과는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간한다. 장자가 생각할 때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장자의 자유주의 철학이다. 그러나 당시 시대는 혼란의 백화제방의 시기였기에 장자는 그 시대에서는 자유주의가 불가했기에 이를 일컬어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은 ‘장자’ 제1편 ‘소요유’이다. 소요유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으로 보행보다는 무도에 가까운 것이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 사상의 핵심이다. 개인주의적 생명 존중론이 양주학파에서 크게 고조되었는데, 이 양주학파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장자’이다. 무한한 소요유의 추구를 표방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라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이 부분이 바로 장자의 철학과 사회의 접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정치가나 기업을 운영하는 CEO를 보면 사회 제도개혁을 위해 개개인의
인권이나 의견을 무시, 묵살하며 성공만 한다면 불법적인 과정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관대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행복은 장담할 수 없으며 이러한 과정은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좁은 식견 이라고 생
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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