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사] 철학과 묵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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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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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 차

묵자(墨子)의 생애

묵가 출현의 배경

묵가의 철학

겸애(兼愛)

비공(非攻)

상현(尙賢)·상동(尙同)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명(非命)

천지(天志)

명귀(明鬼)

비명(非命)

삼표론

절용(節用) 절장(節葬) 비악(非樂)

절용(節用)

절장(節葬)

비악(非樂)

참고서적


본문내용
묵자(墨子)의 생애

본명은 묵적(墨翟), 묵자(墨子)는 묵가의 시조로서 공자와 거의 동시대인 춘추말 전국초기에 활동한 걸로 알려지지만, 그의 정확한 생(生), 졸(卒)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도 공자와 같은 시대, 혹은 공자 이후라고 보있을뿐이다. 따라서 그의 주요 활동시기는 대체로 B.C 5 중엽에서 B.C 4 전후까지보는것이 일반적이다.
보통 묵자의 성을 묵(墨)이라 하고 이름을 적(翟)으로 본다. 그런데 묵이 개인의 성이라는 것 보다는 학파에 대한 호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들은 절검(節儉)과 근고(勤苦)를 주로하는 집단이었으므로 ‘몸이 마르고 피부색이 먹과 같이 검다’는 표현을 의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묵자의 이름에 해당하는 적(翟)은 본래가 긴 꼬리가 긴 꿩(雉) 의미한다. 이 꿩(雉)은 별도로 성벽을 쌓는 공정(工程)표시인 이백척(二百尺)길이의 성의 담장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모두는 그가 목공 또는 공업에 종사하는 장인이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기록에는 송(宋)나라의 대부(大夫)라고 되어 있으나 일설에는 노예출신의 수공인이어서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얼굴에 먹물을 들여 그 이름이 묵적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실존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는 병기(兵器)/ 공구(工具) 등의 기계 제작, 성벽 수비 기구의 비상한 기술자이면서 성벽 수비에 능한 사람이기도 해서 묵수(墨守:묵자의 수비)라고 하면 어떠한 일을 철벽처럼 공고히 지킴을 가리키기도 한다.
묵자는 일찍이 추노(鄒魯)문화의 분위기에서 유학의 교육을 받았다고 전한다. 『呂氏春秋』에 의하면, 그는 주이 귀족이며 『儀禮』에 밝았던 사각(史角)의 후예(後裔)로부터 배웠다. 유가(儒家)에서의 인(仁) 이라는 덕목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한정적 사랑 즉 별애(別愛)이라는 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지 않고 사랑하는 정신 겸애(兼愛)를 구현할 것을 역설했다. 또한 유가의 번거로운 예의가 백성들의 생산을 저해하고 생활을 궁핍하게 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혼란한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배척했다.
참고문헌
인류 최초의 반전 평화 운동가는 동이족의 목수 철학자 (기세춘)
묵가철학연구 (이운구, 윤무학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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