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철학 –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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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나키즘철학 -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을 중심으로
1.아나키즘이란?
아나키스트라 불려지는 사람들은 획일성을 특히 꺼려하므로, 주장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그에 따라 아나키즘에 일반적인 정의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아나키즘의 어원인 anarchie는 an[=not, without]과 arch[=ruler, leader]의 조합으로 ‘지배자 없는’이 본래의 의미이다. 거기에서 ‘혼란’·‘무질서’라고 하는 의미도 발생하기는 하지만 아나키즘이 의도하는 것은 물론 혼란이 아니다. 지배자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철저한 자유를 얻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인간을 지배-피지배라고 하는 관계로부터 해방시켜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추구하는 사회사상’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천성림 저, 「근대중국 사상세계의 한 흐름:사조·논생·인물」, 신서원, 2002, p.43
1902년 일본인 게무리야마 센타로가 『근세무정부주의』란 책을 출판한 뒤 동양권에서는 아나키즘을 통상 ‘무정부주의’로 번역해왔다. 그러나 지배-피지배의 관계는 결코 정부 대 인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 중에 널리 존재한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 번역하는 것은 그 의미를 협소하게 할 뿐이다. 천성림 저, 「근대중국 사상세계의 한 흐름:사조·논생·인물」, 신서원, 2002, p.43 참조.
아나키즘은 산업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 이후 두드러지게 드러난 서방 사회의 모순을 치유하기 위해 나타난 정치 사조로서, 매우 급진적으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의 실현을 주장한다. 천하일가(天下一家)와 만인일체(萬人一體)라는 이상과 낭만이 충만 된 개념으로서의 아나키즘은 그 실현을 위해 군대와 사유 재산의 폐지를 주장하고, 현행 경제 체제와 의회 제도를 부정하며, 전통과 권위를 적대시하는 파괴적인 속성을 갖는데, 서방 문물의 충격으로 전통 문화가 붕괴되고 사회질서가 해체되는 내우외환(內憂外患) 상황의 중국 지식인들에게는 새로운 질서를 건절하는 데 효과적인 처방으로 매우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조광수 저,「중국의 아나키즘」, 신지서원, 1998, p.76
2.유사배는 누구인가?
유사배[字는 신숙(申叔), 일명 광한(光漢)]는 1884년, 당시 청대 학술의 중심지인 양주(揚州)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이래 4대에 걸쳐 춘추좌전학(春秋左傳學)을 가학(家學)으로 계승해 온 전형적인 학자집안 출신인 그는 18세에 수재, 19세에는 거인에 합격하여 촉망받는 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1903년 장병린(章炳麟)·채원배(蔡元培) 등 애국학사(愛國學社) 멤버들과 상해에서 접촉한데다 회시(會試)수험 실패 등을 계기로 벼슬 길을 포기한 그는 혁명파의 진영에 투신한다. 이후 그는 가학인 『춘추좌씨전』을 근거로, 때로는 공양학을 비롯한 여러 전통사상을 답습한 위에 서구의 진화론·민권사상까지 동원하여 신문·잡지·기타 저술을 통해 배만민족주의의 고취에 주력하게 된다. 그런데 1907년 2월 장병린의 초청을 받아 아내[하진(何震)]와 함께 일본에 건너간 그는 지기였던 장계의 조개로 일본의 고토쿠 슈스이 등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면서 사회주의·아나키즘의 열렬한 고취자가 된다. 그가 아나키스트로 변신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예심 강하고 새로운 것이라면 지나치지 못하는 그의 성격과 아내에 의한 자극, 일본 아나키스트들의 영향, 그리고 당시 동맹회에서의 주도권 다툼을 위한 전술적 차원이라는 등 다양한 해설이 있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하기 전부터 지녔던 사회주의·러시아 허무당에 대한 관심이, 보다 자유로운 곳에서 무정부주의자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구체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성림 저, 「근대중국 사상세계의 한 흐름:사조·논생·인물」, 신서원, 2002, p.49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 적은 없었으나, 평등이란 가치는 끊임없이 추구되어 왔다. 사람은 본래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권리를 갖고 태어났으며, 이 권리는 가치로서가 아니라 사실로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루소 이후 많은 정치 사상가들이 동의해 왔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조지 오웰이 에서 고발한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지만 더욱 평등한 사람도 있다는 상태를 지속해 왔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불평등 현상에 대한 연구는 많은 정치 사상가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 왔다.
근대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지식인들이 큰 위기의식을 느끼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중국은 팽배해 가는 민족적 불평등과 국제간의 불평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전통과 서구화의 논쟁이 충만했다. 어떻게 전통적인 사상과 제도를 유지하면서 서양 사조와 문명을 수용하며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시 정치 개혁을 주장하던 지식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들은 민족주의적 열정에 기초하여 여러 종류의 주의와 사상을 제창했는데, 당시 유럽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던 개인주의와 사회주의의 종합체로서의 아나키즘도 큰 비중으로 전파되고 수용되었다. 그리고 유사배는 중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아나키즘을 주장했던 당시 많은 사상가 중에서도 이론 체계가 가장 엄격하고 실천 방안의 제시 또한 가장 구체적으로 내놓았다. 조광수 저,「중국의 아나키즘」, 신지서원, 1998, p.75-76 참조
3.무중심주의철학
유사배는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사상 유사배가 활용한 사상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른바 ‘서양철학’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①기독교의 인류일원설 ②칸트의 박애설 ③ 루소의 천부인권설 ④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⑤마르크스주의의 평등론 등이고, 이른바 ‘동양철학’ 범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①도가의 무위사상 ②불교의 평등관 ③맹자의 만물일체론 ④포경언의 무군주론 ⑤왕수인의 양지론 등이다. 이 밖에도 그는 진화론, 『예기』의 대동사상, 허행의 병경(幷耕)론 등을 곳곳에서 활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중국 고대 문학사상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이철승, 「중국 현대철학에 나타난 아나키즘의 문제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제27집, 2013, p.11, 주석 참조, 재인용.
을 비판적으로 흡수하고 재구성하여 평등관을 중심으로 하는 무중심주의철학을 정립한다. 그에게 평등 문제는 철학의 근본 문제이다. 이철승, 「중국 현대철학에 나타난 아나키즘의 문제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을 중심으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제27집, 2013, p.2, 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