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희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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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70년대 희곡사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70년대 희곡사 (戱曲史)
Ⅰ.1970년대의 국가 이데올로기와 연극 제도
:1970년대 연극은 두 개의 사건을 기억함으로서 알 수 있다. 1970년 5월 『사상계』에 김지하의 오적이 게재된다. 이 시는 청와대와 공안 단체를 불쾌하게 하기는 하였으나, 법적 처벌로까지 확산되지는 않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이 개제된 『사상계』를 전면 압수하고, 폐기하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락하게 된다. 그러나 이 시가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6월1일자에 실리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정치 문제로 비화되게 되었으며, 결국 시인과 잡지의 관계자는 영어(囹圄)신세에 처해졌고, 『사상계』는 더 이상 출판을 지속할 수 없게된다. 그리고 반년 뒤인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시장에서 한 노동자가 노동법 개정을 외치며,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Extraction: “1970년대 희곡연구”(연극과 인간)
ⅰ 이 두 개의 사건 이후 70년대의 정치 상황은 호전되거나 유연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가혹한 독재가 심해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1970년대 수많은 희곡 대본들과 공연 활동이 정부의 통제에 의해 금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담론들은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렇게 공연법 시설 규정에 제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연극 담론들은 현실을 외면한 채 자기 합리화에 급급하게 되었다.
비록 공연법 시설 규정 때문에 소극장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미국과 유럽의 근.현대극이 번역되어 공연됨으로써, 젊은 대학생들로부터 호응을 얻었으며, 소위 예술성 높은 창작극들이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게 된다.
김지하의 과 전태일의 분신이 70년대에 짙게 드리우는 그림자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 시기 희곡사와 연극사는 자기검열에 의해 국가검열을 피해 간 작품의 역사들로 기록될 수 밖에 없다. 요절한 평론가 이성욱이 그의 책에서 70년대를 “쇼쇼쇼”, “김추자”,“선데이 서울” 게다가 “긴급조치”의 시대로 엘레고리화했듯이, 70년대는 “부조리극” 오태석과 이오네스코, 위선적이고 현학적인 연극 잡지, 게다가 폭력적인 검열의 시대였던 것이다.
참고로 한 극작가의 아래의 회고는 이 시대의 질곡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은 문예진흥원의 창작 희곡 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한국전쟁 중의 체험을 소격화, 허구화한 연극을 막연하게나마 구상 중이었다. 1975년 여름에 자유극장에 의하여 한창 연습 중이던 이 희곡이 예륜의 “공연 불가” 결정으로 14년간이나 묶여 있어야 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나로선 규제 못잖게 분격스러운 사실이 또 있었다. 연극계의 완벽한 침묵이 그것이다. 게다가 후에야 안 일이지만 예륜에서 규제를 선창한 자도 연극인이었다. 내가 연극협회 초대 극작 분과위원장이 되자 무엇보다도 먼저 공륜의 규제를 비판하는 총대를 메고 나선 데는 이런 원인도 작용했던 것이다.
Extraction:1970년대 희곡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