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 역사와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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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와 역사의식
I. 읽기자료
읽기자료 1. 역사는 현대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역사는 우리에게 현대 사회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나? 우리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밖에 없다. 과거는 경험을 의미하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나쁜 것을 배울 수도 있으며, 자주 그러기도 한다. 그러나 거부한다면 극단적으로 정신이 이상해질 수 있다.
우리는 경험에 의존하며 배운다. 역사가들은 경험의 기억 은행이다. 역사가들이 집단적인 과거의 기억을 수집하고 만들어내는 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역사가에게 의존해야 한다. 문제는 역사가들이 그런 일을 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다. 과거를 이용하는 방법은 규정하기 어렵지만 분명 중요하게 느껴진다. 어떤 시점을 임의로 선택해서 기관의 역사를 기념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도 역사를 필요로 한다.
18세기까지는 유럽에서조차 역사는 사회, 즉 모든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역사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지나간 시대가 좋았던 것으로 규정되었고 사회가 되돌아가야 할 곳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과거로의 복귀가 실제로 가능하거나 심지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오늘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고인 체하는 혁명적 혁신이어야 했다. 실제로 그것은 성과를 이룩했다고 주장하는 역사를 꾸며내야만 했다. 그러한 꾸밈을 없애는 것이 역사가의 몫이다. 만약 그것이 이데올로기 주창자들에게 부정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우리에게 현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데 있어 역사가 담당하는 중요한 기여이다.
역사의 교훈이나 어떤 것을 배우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보를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듣는 것이다. 이론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투박한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현대사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비(非)역사적이거나 반(反)역사적인 계산은 이러한 상황을 장님처럼 인지하지 못하고, 인식조차 못한다.
실제로 역사가 우리에게 현대사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대부분이 역사적 경험과 역사적 관점의 결합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한 역사 경험이 역사가에게 가르쳐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역사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시도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더 전반적으로 보면 세계가 전망을 어둡게 하는 두 가지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이 역사에 대한 교훈을 거의 배우지 않거나 무시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눈가리개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이 역사가의 직무이고, 역사가가 그러한 일을 하는 한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2. 읽기자료
읽기자료 2. 기대승(奇大升)-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선조 즉위 초 경연은 기대승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마음, 임금의 책임과 신하의 의무, 그리고 성인과 현자가 어떻게 백성을 평안하게 하였는가, 그 궤적을 거침없이 토로하였다.
그는 임금이 현자를 얻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다스려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군신공치(君臣共治)! 그러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있기 때문에 “임금과 신하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하고 정의가 소통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임금의 자세와 신하들의 자세를 제시하였다.
또한 그는 이황, 조식, 성운, 이항 등 원로사림이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선조가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의할 적격자가 이들 원로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원로 사림은 사림탄압의 어두운 과거가 깨끗하게 청산되지 않는 상황에서 좀처럼 조정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과거청산과 원로사림의 초빙! 기대승이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의 제일급무였다. 특히 이황의 진출에 온 마음을 섰는데 이황은 우의정이 되지 못하였다. 대신 중종 치세 때 권신 김안로에 대항하며 한때 유배를 가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명종 치세를 순탄하게 보낸 홍섬이 올랐다. 결국 이황은 ‘성학십도’를 올리고 낙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