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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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평역
임철우의 사평역은 1차과제붉은방을 준비하며 자료를 찾아보다 살짝 임철우의 사평역에 대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시대의 추억인 겨울 간의역을 표현한 글을 보며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저의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2차 과제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사평역은 막차와 첫차가 한 대씩 있는 간의역인 눈이오는 사평역이라는 장소에 9명의 인물이 국민학교 교실 하나 정도의 크기인 대합실에서 중앙엔 톱밥난로가 있고 그 주위에서의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역시 간의역답게 눈에 띌만한 물건은 없다. 열평도 되지 않는 공간이지만 턱없이 넒어 보여서 더욱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준다. 지금 대합실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다섯이다. 아까부터 줄곧 콜록거리고 있는 중늙은이 그리고 등을 떠받치고 있는 건장한 팔뚝의 임자는 바로 노인의 아들(농부)이다. 그리고 중년의 사내 그리고 저만치 멀리 나무의자에 점퍼 차림의 청년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청년에게 약간 떨어진 곳에 미친 여자가 의자 위에 벌렁 누워 있다. 간의역엔 난로라고 해도 톱밥을 태워 열을 내는 난로인데 미처 월동준비(톱밥)을 확보해두는 것은 김씨가 맡은 일이지만 역장인 자신까지 합해 기껏 세 명뿐이니 서로 책임을 확실히 구분지을 수 있는 일 따위란 애당초 있을 턱이 없다. 농부는 짜증스럽다. 몇 달째 끌어온 노인의 병도 그렇고, 하필이면 이런 날. 그것도 밤중에 눈까지 펑펑 쏟아져 내리는데 기차를 타야 한다는 일도 그렇다. 그기에 간의역까지 왔는데 기차마저 감감무소식이다. 중년사내는 등을 돌린 채 난로의 불기를 쬐고 있는 중년 사내는 자지러지는 기침소리를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기침 소리를 들으면 사내에겐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김방장이 늙은 허씨다. 허씨는 사상범으로 잡혀 무기형을 받은 허씨는 스물일곱 살부터 시작한 교도소 생활이 벌써 이십오년전이다. 교도소에서 해소병으로 골골 거렸다. 출감하는 날 허씨는 무기수답지 않게 눈물까지 흘리며 나가면 혹 우리집에 한번 들러봐 달라며 소식 끊긴지 하도 오래 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가봐 달라고 한다. 하지만 사내는 출감후의 생활이 꿈같다고 느끼며 생소해 한며 사내에게 당혹감에 빠뜨리고 거북하게 만들뿐이었다. 그리고 자꾸만 무엇인가 대단히 커다란 것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대합실 안은 조용하다. 바람에 휩슬려 다니며 유리창이 덜그럭거리고 톱밥이 톡톡 튀어오를뿐 사람들은 입을열지 않는다. 미친여자쪽은 시체마냥 미동도 없다. 대합실에서 새어나간 불빛이 유리창 가까운 땅바닥 위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비추고 있고 눈발을 망연히 바라보는 청년은 그것이 무수한 나비 떼 같다고 생각한다. 청년은 대학생이다. 아니 대학생이 아닌 대학생이었다. 갑자기 대합실 출입문이 열리며 한 떼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몸집이 큰 중년 여자와 바바리코트를 입은처녀, 큼지막한 보따리를 하나씩 이고 오는 행사꾼 아낙네들 그녀들은 무척 서둘러 온듯하다. 들어오자마자 기차떠난것이 아닌가 물어보는 것을 보니 역장은 대합실을 넘겨다보며 오늘 막차는 뜻밖에 손님이 많은 편이라 생각한다. 간의역 역시 손님이 하루에 많아봐야 하루에 3~4명에 지나지 않는 간의역에 표를 구입한 사람만 9명이라면 성공한것이라고 생각될것 같다. 그리고 뚱뚱한 여자는 이제 얼었던 몸이 풀리고 나니 입이 심심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시골 보따리장사 아낙네들 따위와 얘기한다는것은 자신의 품위에도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땅한 상대를 찾기 위해 휘져어 보고 있다. 서울의 그 뚱뚱한 여자는 자신은 서울사람 고양 있는 표준어를 사용하는 서울여자라고 생각하며 우쭐해 하면서도 같은 사람이라는건 잊고 그시대 부의 상징인 코트를 걸치고 있으니 뚱뚱한 덩치큰 아줌마의 위상은 더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바바리코트의 처녀는 뚱뚱보 아줌마의 시선을 외면한다. 이처녀의 이름은 춘심이다. 버르장머리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남을 천천히 훑어 보는 개 같은 춘심이는 술집에서 일을 한다 밤에선 밤의 황제 이지만 낮엔 벌거지 떼처럼 무수히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 중에 민들레집 춘심이의 얼굴을 기억할 사람이라곤 좀체 없을 터인데도 그녀는 언제나 고개를 쳐들기가 어려웠다. 삼 년째 되어 가는 이력에도 그 버릇은 여전하다. 애써 고개를 빳빳이 세워 뚱뚱한 여자가 자기를 여전히 뻔히 훑어 보고 있을을 확인한다. 춘심이는 고향에 내려왔다가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길이다. 중학을 졸업하고 몇년 빈둥거리다가 어느 날 무작정 산경한 후 삼년만에 찾아온 고향집이었다. 서울에선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고 했지만 집에서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의 행복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이름도 춘삼이가 아닌 옥자도 되돌아 왔다. 하지만 고무줄 처럼 늘어진 시골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을 즈음, 닷새 간의 옥자 역은 끝내고 다시 춘심이가 되기 위해 고향집을 나선것이었다. 간의역에선 특급열차가 지나가고 허탈감에 앉아 있는 9명의 사람들 사이로 역장이 바께스를 들고 나타난다 바께스엔 우일하게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준 난리의 탈것 톱밥이었다. 추위에 고생한다고 인사를 하자 농부가 얼른 인사를 차린다 농부에겐 제복을 입은 사람 즉 공직자는 무조건 존경의 대상이 되기때문이다. 중년의 사내는 교도소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역광장에서의 행사꾼에게 한 두름을 사서 완행열차를 타고 새벽 사평역에 도착해 허씨의 노모를 찾아 죽은지가 5년도 넘었고 형도 식솔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대학생은 벽에 걸린 지명수배 포스터를 보다 대학생이 아는 얼굴이 하나 끼어 있었다. 청년의 선배이고 시위를 주동한 협의로 몇달전부터 수배되어 있었다. 이 대학생은 고향이 사평역이 있는 곳이고 고등학교때도 통학하며 역장님을 줄곧 뵈었던 학생이었다. 간의역은 동네 이장님이랑 비슷하고 가족 형님 한때엔 아버지 같은 존재 이시기 때문이다. 어릴적 부터 학생이 많이 어릴때 부터 보고 이 학생의 아버지까지가 누구 이고 어떻게 자라 왔는지는 모르시겠지만 같은 한 부락의 일원으로 생각 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았고 대학생은 방학때문에 내느냐있느냐는 물음에 대답만 하고 웅크리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은 방학때문에 내려온것이 아니라 제적처분을 받고 내려운 것이다. 시골에서 공부 그리고 서울 그리고 국립대학합격이라고 하면 90%는 성공한것이라 생각하시며 즐거워 하셨고 대학생의 아버지 꿈은 판사 아들을 두는 거였고 그렇게 된다면 내일 죽어도 한이 없노라고 생각하시는 아버지 이였는데 제적을 당했다고 말을 할수 없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대학생은 유일한 희망이다. 지난 여름해 집에 내려와 나도 농사나 짓는 게 어떻겠냐고 한 마디 건넸다가 노발대발 화를 내신후 말도 못끄내게 되었다. 누구 하나 찾아갈 사람도 없는 그 거대한 도시를 향해 집을 나섰을 때 청년은 울음을 터뜨릴뿐했다 이제 대학생은 사회인이 되었는듯 하다 대학이라는 그레도 어느정도의 보호되는공간에서 갑자기 사회라는 냉혈한 공간으로 나온대학생은 무서움과 두려움 20살 청년이 처음으로 입영영짱으로 인해 두려워 하는 무서움과 비슷한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거기에 아직까지 아버지는 대학생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책값, 하숙비 그기에 어머니까지 품삯까지 모와가며 대학생 아들 에게 몸 살펴가며 공부 하라고 준 그돈과 그건은 부모님이 대학생 아들에 대한 애정과 모든것이었을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춘심이는 입을 삐쭉인다 부러움과 함께 춘심이가 일을 하며 본 대학생들의 모습이었으니 속으로 생각한다 춘심인 언제 공부하는지 모르겠고 운동회다 축제행사다 데모다 시위다에 언제 공부를 하는지 등록금은 몇백만원을 넣어 두고 3개월사이에 무슨 행사가 그렇게도 많은지 하교시간만되면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하고 무슨 뼈 빠지는 막노동 이라도 종일 하고 온 사람처럼 열나게 술을 퍼마시는 녀석들에 괜시리 진지한척 애쓰는 배부른 녀석들 하지만 역시 부러운 존재 라고 생각한다. 70-80년대에 대학생이란 시위와 대모가 많은 시기 이긴 했지만 대학생 그렇면 그때만 해도 축복받은 집에서의 공부를 잘해야만 갈수 있는 그런 장소였고 농촌지방에선 대표해서 갈수 있는 학교였다. 간의역은 농촌 마을의 대중교통과 개인차량이 아니면 기차 뿐인데 기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철길이 끊어 지지 않는다면 꼭오는 우리 서민의 발이 되어준 기차 그런 그차가 하루에 1~2대 가량 뿐인 대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에서 대학생 아들이 있다는건 뿌듯하고 자랑할수 있을만한 그런것이었다. 지지금의 풍족한 생활의 대학생들에겐 상상할수조차 없는 그런 이야기 일것이다. 갑자기 여자들은 문득 입 안이 허전한지 아낙네 하나가 보따리에 손을 집어넣어 무엇가 찾고 있다. 손끝에 북어 두마리가 따라 나와 대뜸 난로 위에 얹어 굽더니 찢어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런 풍경 역시 각박하고 삭막하고 서로 살기 바쁜시기에 서로 지나가다 어깨라도 부닥치면 서로 째려 보는 이 시기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정도는 이해를 하겠지만 느낄수 없는 그런 관경 일것이다. 푸근하고 인정 많은 아낙네 와 서울에서 내려온 뚱뚱보 아줌마가 대표적이 예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분은 고맙긴 하지만 이렇게 먹어버리면 뭐 남기나 하겠소 하며 챙겨 주지만 하지만 뚱뚱한 아줌마는 마지못한 시늉으로 그걸 받더니 행여 더러운 것이라도 묻지 않았나 싶은듯 손가락 끝으로 왜줬나 할정도로 얄굿게 먹고 있다. 맛이 좋다면 맛이 좋네요 라고 말을 할수도 있겠지만 서울의 반지르르한 말로 되갑는다. 이것이 아직은 시골에선 정이 살아 있다는 증거 인것 같습니다. 서울에선 서로 서로것을 챙기기 바쁘고 돈이 되지 않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쓰는 도시라는장소 계산적으로 보아 손해라고 생각이 되면 절대로 하지 않는 도시라는 곳 하지만 아직까지 시골은 도시처럼 삭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뚱뚱한 아줌마는 아침 버스로 사평에 도착하여 분풀이를 톡톡히 할 참으로 벼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사장님으로 사평댁은 주방에서 일을 했다. 남다른 신뢰로 애정을 배풀었다라고 생각했는데 배신을 했다고 생각하는 뚱뚱한 아줌마는 놀이를 갔다가 와보니 사평댁이 이야기도 없이 삼십만원가량을 들고 온다간다 말없이 사라진것이다. 뚱뚱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