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  비뢰도 -1
 2  비뢰도 -2
 3  비뢰도 -3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비뢰도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비뢰도
개인적으로 현대 소설의 주인공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 그들은 항상 개인이나 사회에 좌절 혹은 갈등하고 끝이 흐지부지 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보고 있는 ‘정이현’의 에서도 위층에 사는 노인이 박정희 대통령인지, 또 주인공이 위층 노인을 만나고 겪은 심경의 변화가 그녀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거짓말로 먹고 살던 그녀가, 위층 노인을 만나고 직장을 그만둔 후,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 없다. 물론 그러한 점이 좀 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매력적인 주인공의 모습인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없다.
현대 소설자체가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소설에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공감을 얻어내고, 우리에게 사회나 대인관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 준다. 에서 제시하는 것은 거짓말로 먹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우리도 정말 이렇게 살고 있지 않는가’ 혹은 ‘우리가 그러한 거짓말에 속고 살고 있지 않는가’라는 공감과 의문이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답 또한 찾아보려 애쓴다. 또 만약 정말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어떨까, 혹은 그가 진짜 박정희 대통령인가에 대한 의문이 줄을 이면서 글을 읽는 내내 고민하게 되고, 거기에 나름 답을 낼 때 느끼는 만족감은 다른 곳에서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이 매력적인 것이지,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의 주인공은 비정규직에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약한 현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김애란’의 에서도 주인공 하나만 때 놓으면 별 볼일 없는 여자다.
때문에 나는 현대 소설보다는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소설들이다 보니, 글에 담긴 내용이나 사회적인 시사점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무협 판타지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누구나 한번쯤 꿈꿀만한 멋진 것들이다.
그러한 주인공 중 나는 내 고교 때 읽었던 무협 판타지 소설 의 주인공인 ‘비류연’이 매력 있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매력적인 이유를 좀 더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먼저 ‘비류연’이라는 인물은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협 판타지가 진행되는 공간은 우리가 사는 현대가 아니다. 장르 문학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곳은 작가가 상상해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 그것이 중세의 서양일 수도 있고 중국일 수도 있다 - 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없는 여러 가지 위험이 존재한다.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한 능력 배양은 필수적이다. 특히나 장르 문학의 주인공들은 무력(武力)이 뛰어나다. ‘비류연’ 또한 이러한 인물이고, 그의 무력은 측량하기 힘들다. 일신(一身)으로 소위 말하는 일류 고수를 수십 수백 격파하거나, 거대한 바위를 일격에 부수는 것만 봐도 그가 비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비류연’은 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인물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그러한 인물인 것이다. 그에 반해 현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대개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눌리고, 피해를 입으며, 어떤 문제를 제시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만한 힘이 없다. 물론 그러한 점 때문에 어떤 사회 문제를 제시하기가 쉽고, 공감대 형성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모습은 남들 위에 서서 남들보다 좀 더 잘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과 경쟁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으면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아닌가? 경쟁력이 없으면 남들보다 잘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류연’이 가진 막강한 능력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다.
비류연의 또 다른 매력, 그것은 자신감이다. ‘비류연’은 그의 동료가 인질로 잡혀 있다거나, 위기 처한 상태에서도 자신감 있게 행동한다. 단순히 무력이나 재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한 자신감을 토대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할만한 방법을 강구해 내고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일도 자신을 믿고 진행한다. 그것이 무모해보일지도, 우연을 가장한 ‘작가의 농간’과 미리 준비된 안배를 통해서 이루어 내고 만다. 그에 반해 현대 소설의 주인공들은, 조금 비약된 말일지는 모르나 패배주의자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 해보지도 않고, 그들은 현실에 좌절한다. 아니 좌절해야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좌절을 통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편이 좀 더 이야기가 수월하게 진행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코 그러한 모습이 어떠한 동경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감이 작용하는 곳은 많다. 당장 대학 생활만 해도, 자신감 있는 사람이 좀 더 주목받고 받는 해택 또한 많다. 같은 자료를 가지고 발표를 하더라도 발표자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 발표가 최고가 될 수도 있고, 최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는 이러한 자신감을 요구하는 곳이 훨씬 많을 것이다. 회사 면접을 볼 때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담긴 사람과 잔뜩 긴장해서 자신이 가진 기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사람, 이 둘 중에 누가 그 회사에 취직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것이 현대 사회인 것이다. 자신감이 없다는 것은 남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남들보다 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기 스스로를 믿음으로 좋은 결과를 도출하게 하는 것, 그것이 ‘비류연’의 두 번째 매력이다.
무협 판타지의 주인공 옆에는 항상 유능한 사람이 모인다. 그런 주인공들과 결혼 하는 여자, 소위 말하는 히로인들은 그 시대의 최고의 미녀이고, 주인공의 부하들은 항상 주인공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며 그들이 가진 능력 또한 발군이다. 정말 우습게도, 그 시대에 가장 유능한 인물이란 인물은 모두 모이게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비류연’ 또한 이러한 인물 중 하나이며, 그의 주변에는 양대 무력집단의 최고 후기지수들이 산재해 있고, 그와 함께하는 여인 역시 절세 미녀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비류연’이라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처음에는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가도 후에는 모두 그의 편이 되고 만다. 소위 말하는 ‘카리스마’가 그에게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세 번째 매력이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 내에서 인간관계는 필연적이다. 내가 있으면 네가 있고 너와 내가 있으면 우리가 있는 것이 사람 사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런 곳에서 살아가려면 나에게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현대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고독하다. 아마 현대인의 주속성에 고독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독이 좋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점에서 ‘비류연’이라는 인물은 본받을게 많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악감정을 품고 있어도, 모두가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적마저 아군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그가 가지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강력하고, 매우 가지고 싶은 능력 중 하나이다.
‘비류연’의 마지막 매력은 조금 식상하다. 바로 해피엔딩이다. 무협 판타지 소설이니 만큼, 그 결과는 뻔할 것이다. 가 현재 단행본으로는 25권까지 출판되었고, 아직도 연재중이지만 그 끝은 ‘비류연’의 승리로 마감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무협이나 판타지의 주인공은 데드 엔딩으로 가거나 매우 심오한 결과를 남기면 곤란하다. 읽는 독자층이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인공이 승리하기를 바라고,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에 반해 현대 소설의 결말은 무궁무진하다.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죽음이나 자살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흐지부지한 결말이든, 강렬한 죽음으로 결말을 맺든 간에 현대 소설은 끝은 대체로 무언가를 던지되, 그 끝이 개운하지 않다. 이러한 결말은 문제의 전달에 있어서는 높은 효과를 보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행복’하길 원한다. 공부를 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이러한 ‘행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러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므로, 나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행복을 찾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서로 부딪히게 되고 그 중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불행’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갈고 닦아 행복을 쟁취하려 한다. 하지만 무협 판타지 속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행복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그리고 ‘비류연’ 역시 그를 가로 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의 행복을 명쾌하게 찾아 낼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명쾌하게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조금 추상적이긴 해도 누구나 자신의 ‘가장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약속된 행복은 정말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판타지 소설이 담는 내용이 가볍다하여 그것이 문학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판타지 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타지, 말 그대로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은 사람들의 염원이나 꿈에서나 그릴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꿈에서 판타지 소설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최고의 자신을 그릴 것이다. 그러한 의미로 ‘비류연’은 내가 꿈꾸는 최고와 상당히 유사하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이들로부터 인정받으며,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것. 현실에서는 여러 장애물에 가로막혀 이루기 힘들지만, 무협 판타지에서는 이러한 장애물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다.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다. 기연이나 영약 같은 게 존재하지 않고, 좋은 무기 하나 있다고 갑자기 강해지지도 않는다. 현실에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작가가 원하는 데로 흘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