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현실과 문학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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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전후의 현실과 문학의 분열
1 잃어버린 문학의 시대
해방 직후 한국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삼팔선을 경계로 분단된다. 이후 서로의 정치적 이념이 다르게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이다. 전쟁이 끝나고 참담한 현실 속에서 민족의 이념적 분열은 점점 심화된다. 그 결과로 남북의 정치 사회적 모순이 확대되었고, 분단 논리 자체가 민족의식에 자리 잡으면서 한국 문화의 전반이 편협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은 현대문학에 있어 잃어버린 문학의 시대를 낳았다. 해방 직후 만끽했던 민족적 감격이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열정 같은 것들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아래 사라져버렸다. 사회적 기반이 파괴되어 문학 자체에 대한 열정마저 상실된 상황 속에서 문학은 일시적 공백 상태를 겪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친 후 한국의 전후문학은 정신적 위축 상태를 겪게 된다. 남북 분단과 이념의 대립에 연관되는 사회주의 사상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남북의 민족적 동질성도 흐릿해지고, 분단은 당연시하는 의식이 형성됐다. 한국문학은 전쟁의 상처를 정신적으로 극복하고, 문학이 갖춰야 할 규범을 재정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분단문학’이 현대문학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서사적 공간과 황폐한 삶
(1) 전후소설의 가능성
-현대소설은 195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전쟁을 불러일으켰던 이념과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싹트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지표와 가치의 정립을 시도하기도 한다. 기성 문단의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 세계의 모색과 작가적 변모를 꾀하였다. 새로 등장한 전후세대 작가들은 다양한 체험과 서로 다른 소설적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다지게 된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소년기를 보내면서 해방을 맞았고, 청춘을 전쟁 속에서 보낸 후,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 위에서 새 삶을 가꾼 사람들이다. 이들의 언어는 삶에 대한 절망과 회의 속에서 던진 질문의 형태일 뿐이다. 이러한 언어들이 여러 형태로 문학적 형상화가 된다. 이것이 1950년대 전후문학의 실체이다. 특히 김동리, 황순원, 안수길 등의 소설적 전환은 전후문학의 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김동리는 ‘생의 구경적 형식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신념을 내세우며 가장 운명적인 인간 삶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죄의식과 번뇌, 그리고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는 김동리의 문학 세계에 중요한 축이다.
황순원은 해방 이후 소설이라는 장르가 용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험해봤고, 소설적 형상화가 가능한 모든 주제를 다루었다. 그의 언어는 우리말이 산문의 영역에서 도달할 수 있는 미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야기가 갖는 흥미보다도 황순원만의 문체가 갖는 힘이 더 독자를 잡아끈다. 또한 황순원은 단편에서 장편으로 장르의 확대를 꾀하였다. 이것은 삶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자 했던 초기의 주제 의식이, 이념성의 추구나 삶의 인식이라는 주제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안수길의 작품 세계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도 황순원의 경우와 비슷하다. 단편 소설에서 예리한 면모를 보이다, 장편 소설을 통해 역사의식의 투철성으로 구체화된다.
(2) 저항과 비판의 정신
-전후세대 작가들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스스로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가치도 없고, 기댈 이념의 지표도 없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삼은 것은 다소 막연하지만 본질적인, 자아의 존재에 대한 대응 논리였다. 하나는 현실적 상황과 조건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 자체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과 고발이었다.
전후세대의 작가들은 기성에 대한 반항의 논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곧 그들의 한계가 되었다. 저항 자체가 목적이 되다보니 모든 인식과 정신, 의식 등을 서양의 것을 빌려야 했다. 자신들의 논리를 사르트르나 카뮈의 실존적 의식에 빚진 셈이다.
장용학은 전후의 상황을 소설적 배경으로 수용하면서 소설이 지켜온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요한시집」에서 서사성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행위의 구조를 해체하고 관념성을 대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요구되는 구체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관념성이 이후에는 어느 정도 극복되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