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의 삶과 시

 1  박인환의 삶과 시 -1
 2  박인환의 삶과 시 -2
 3  박인환의 삶과 시 -3
 4  박인환의 삶과 시 -4
 5  박인환의 삶과 시 -5
 6  박인환의 삶과 시 -6
 7  박인환의 삶과 시 -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박인환의 삶과 시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박인환의 삶과 시
1. 들어가며
우리 시단에서 1920년대 태생의 시인들이 가지는 위치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국어를 습득해야할 유년기에 일본어를 학습해야만했던 세대였다. 언어습득이 일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극히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나 성인이 되어 습득하는 언어(예를 들면 외국어)로는 추상적 사고가 힘들어지는 예로 볼 때 모국어를 습득하는 시기는 곧, 한 인간의 사유체계의 틀을 짜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인환을 위시한 이 세대의 시인들은 시인으로서는 선천적인 약점을 안은 채 문학을 시작해야했던 불행한 세대였다. 그들이 정서적, 사상적으로 한창 혈기왕성할 20세 무렵에 이르러서는 조국해방의 감격에 이어 극심한 정치, 경제적 혼란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갔으며 지식인 집단은 이념에 때라 좌·우로 나뉘었다. 그리고 곧이은 전쟁은 이 분열을 극대화, 고착화시켰다.
50년대의 시에는 당연하게도 이런 역사적 경험의 흔적들이 수없이 발견된다. 박인환의 시 역시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기에 앞서 그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나를 투박하게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2. 박인환의 삶
박인환은 1926년, 4남 2녀의 맏이로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가정형편은 중산층 이상이었다. 11세 때 서울로 이사해 종로구 원서동에 정착했다. 그는 이후로 계속 도회지 생활을 한다.
1941년 영화구경에 탐닉한 것이 말썽이 되어 경기공립중학교를 자퇴한다. 그의 자라온 환경, 영화상영의 취미 등을 고려한다면 그의 성격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유추할 수 있다. 도회적인 것에의 동경, 겉멋, ‘모던’에 대한 편애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학교를 자퇴한 후 평양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자 다시 자퇴한다. 그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차린다. 당시 돈으로 5만원의 돈이 들어갔다. 그에게 있어 이 서점은 사업의 발판이라기보다는 문단 진출의 발판이었다. 그는 문학청년들에게 소굴을 제공해주고 탁월한 달변과 정열의 힘으로 그 소굴의 주인이 된다. 이곳에서 국제신보의 주필과 안면을 터 그 지면으로 데뷔를 한다. 신춘이나 추천제도가 부활하지 못했던 1946년의 일이었다.
1948년 서점을 폐업하고 결혼한 후 신문사에 취직한다. 이후 김수영 김수영金洙暎(1921~1968) : 서울 출생. 선린상고를 거쳐 도일했으나 징집을 피해 만주로 이주. 후일 광복과 함께 귀국한다. 동란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다.
등과 함께 ‘신시론’(新詩論)이라는 동인을 조직해『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모더니즘 계열의 동인지를 간행한다.
6·25를 맞이하여 박인환의 시 세계는 큰 변화를 겪는다. 겉멋부리기는 자제되었고 참상에 의한 허무주의가 고개를 든다. 그러나 쓸데없는 멋을 부리지 않고 심정적인 진실을 담아낸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우수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1951년 부산에서 ‘후반기’라는 동인작업에 참여한다. 그러나 ‘후반기’는 동인들의 정치적인 입장차이 등의 이유로 동인지를 출간하지 못한 채 해산하고 만다. 그들의 간헐적인 시작(詩作)은 훗날 고은 고은高銀(1933~) : 전북 군산 출생. 20세부터 10여 년간 승려생활을 했으나 환속.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하던 초기의 시 세계는 훗날 어두운 시대상황에 대응해 치열한 현실참여의 그것으로 변화해간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서 왔다.
이나 김수영에게서 뿐 아니라 오늘날의 비평가들에게서도 혹평을 피해나가지 못한다. 김춘수 김춘수金春洙(1922~2004) : 경남 충무 출생. 경기고를 거쳐 니혼대 예술학과 중퇴. 고교 교사를 거쳐 경북대 교수와 영남대 학장을 역임. 초기에는 릴케의 영향을 받은 시를 썼으나 50년대에 들어 사물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성격의 시세계를 보임. 사물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시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