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충의 진산사건과 그 역사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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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의 진산사건과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윤지충의 진산사건과 그 역사적 평가”
-요약정리-
‘나’를 평가하는 기준은 가지각색일 것이다. 활력 넘치는 신실한 교회청년으로 평가해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직설적이고 막말을 일삼는 나쁜놈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각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과 그 시점이 다르기에 옳고 그름의 판단의 잣대를 정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 90년대의 ‘나’와 지금의 ‘나’의 평가 또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평가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윤지충의 진산사건” 또한 마찬가지임을 나타낸다. 진산사건의 가장 큰 요점은 제사거부로서 이는 당시 조선사회의 정치 이념인 유교에 반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윤지충은 서학의 확고한 방침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중국에서 다수의 한역서학서를 집필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신학과는 다른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마테오 리치는 종교적 성격이 농후하다 비판받았던 공자묘 참배나 조상제사에 대해 우상숭배와 관련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유인 즉슨, 중국인들은 공자나 망자를 신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이들에게 기도를 원하는게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자의 경우 중국인들에게 있어서는 큰 스승이며, 제사는 효의 한 행위일 뿐이라 보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도미니쿠스회, 프란체스코회는 강력한 반박을 주장하였고 결과적으로는 1704년 교황청이 제사불가로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 뒤 1790년 조선교회는 제사금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은 조선보다 한발 앞서 기독교를 몸소 경험하게 되었으며, 중국에서 발생된 문제는 고스란히 한국에서도 발생됨을 알 수 있다. 천주실의 제8편에 마테오 리치는 “무릇 사람은 세상 안에서 세 아버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천주, 둘째는 나라의 임금, 셋째는 가장을 말합니다. 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불효한 자식이 되며, 낮은 아버지를 따르며 높은 아버지를 거역하게 되면 진실로 불효하는 사람입니다.” 라 주장한다. 윤지충은 이러한 주장을 근거로 제사를 반대했던 것이었다. “아들과 아버지가 같다.”는 기독교적 논리는 당시 유교적 가족관이 상당했던 조선사회에서는 전하기가 쉽지 않은 교리였다. 이를 확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신주에는 부모의 아무것도 없기에 불사른 것”이라 주장했던 윤지충의 주장과 “인간은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영혼은 소멸되지 않고 천당 or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신주에 깃들 수 없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진산사건 이후 조선의 천주교회의 박해는 상당했으며, 유학자들 사이에서 윤지충과 같은 신실한 서학자들을 ‘이물’로 생각하고 판단하였다. 속된 말로 ‘돌아이’ 취급을 한 것이었다. ‘이물’ 취급을 받았던 윤지충의 대한 평가는 일반인들과 동일하게 죽음을 두려워했던 보통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모습은 조선사회에서는 반역자였지만, 교회사에서는 순교자로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사람”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제사문제에 대해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천주교는 1939년 교황의 제사허용으로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윤지충 당시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여졌던 신앙의 문제가 오늘날의 천주교는 상대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즉, 진산사건은 기독교 선교사들에게는 피선교지의 종교적 혹은 문화적 관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시사할 수 있으며, 상충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질문 또한 던지고 있다. 오늘날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는 한 인물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당시의 사회에서 ‘이물’취급을 받았던 윤지충은 오늘 날의 사회에서 더 이상 ‘이물’이 아닌 노력의 ‘산물’로서 평가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역사와 평가는 서로 상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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