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 조선후기의 지대의 지역성 -역사지리학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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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리학] 조선후기의 지대의 지역성 -역사지리학적 접근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농업 생산성의 증대

3. 조선 후기 농업의 지역적 특성

4. 조선후기 지대의 지역성

5. 나오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사관의 논점에 따른 한국 사회의 정체성론은 이미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 하지만 근대라는 시대에 있어서 서구의 발전 도식을 그대로 한국사에 이식한 논리도 비판이 따랐다. 각 사회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된다. 이른바 “근대”라는 것도 정답이 없다. 큰 기조의 흐름은 있지만 각 사회는 각자의 근대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중세의 해체와 근대로의 발전에 있어서 실체에 접근은 지리학적 방식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17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중엽까지인 조선 후기 사회는 변혁의 시대였다. 조선 왕조의 지배 질서가 해체되는, 즉 중세 봉건 체제가 붕괴를 의미한다. 경제적 변동을 물질적 기초로 하여 이른바 “근대”를 지향하는 여러 움직임이 전개되어갔다. 다양한 변혁 가운데에 토지 소유 구조의 변화에 주목하여 조선 후기 지대의 지역적 차이를 고찰해 보겠다.

2. 농업 생산성의 증대
조선의 인구는 건국 초인 1393년에 약 550만으로 추정되지만 16세기를 전후로 해서 1천만을 돌파한다. 1744년에는 약 1800만으로 정점을 이루고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인다. 조선 후기의 인구 증가가 생산성 증대에 한 바탕이 되었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이앙법의 보급이다. 이앙법은 농업 노동력을 절감하고 생산량을 증대시킨다. 지금은 논농사라면 당연히 이앙법을 한다고 생각되지만, 이 방식은 수리시설 확충이 전제되지 않으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조선 전기에는 확산되지 못했다. 새로운 품종의 개발과 시비법의 발달 그리고 반종법과 화누법과 같은 새로운 제초 기술 등도 생산력 증대의 바탕이 되었다. 밭농사에 있어서도 품종의 증가, 상품작물, 구황작물의 재배 그리고 견종법, 보리, 콩, 조의 썩어짓기의 일반화 등도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다.
참고문헌
천일록을 통해 본 조선 후기 농업의 지역적 특성, 정치영,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003
조선 후기소작 형태의 지역적 차이에 관한 연구, 김기혁,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996
한국사 33 조선후기의 경제, 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