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박준승과 박희도(민족대표 33인) 인물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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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현대사] 박준승과 박희도(민족대표 33인) 인물조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박준승
1. 요약정보
2. 연표
3. 상세정보
4. 신문조서
5. 인물에 대한 견해

Ⅱ. 박희도
1. 요약정보
2. 연표
3. 상세정보
4. 신문조서
5. 인물에 대한 견해

# 참고문헌
본문내용
박준승은 1866년 11월 14일 임실군 청웅면에서 박호진(朴昊鎭)의 3남으로 태어났다. 10세를 전후하여 동학에 깊이 관여했으며, 청웅면에 삼화학교를 세운 김영원을 스승으로 모시고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박준승은 최제우의 시천주(侍天主),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손병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받아들여 나라를 구할 사상으로 삼고, 공부하던 한학을 접은 뒤 1891년에 천도교에 입교하여 1897년에는 접주(接主)가 되어 도호(道號)를 비암이라 정하였다. 그는 임실을 중심으로 태인ㆍ정읍ㆍ순창ㆍ남원과 전남 장성 일대에서 교리 포교에 힘썼으며, 1908년에는 수접주(首接主)가 되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동학의 저변확대에 진력하였다. 1912년에 장성대교구장(長城大敎區長)과 전라도 순유(巡諭)위원장, 이어 1916년에 전라도 도사(道師)에 추대되었다.
1919년 2월경 손병희(孫秉熙)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은 그는 수교도(首敎徒)인 유태홍(柳泰洪)ㆍ박영창(朴永昌)ㆍ김의규(金衣圭)에게 독립선언서 5,000매를 배부하여, 장성ㆍ남원ㆍ임실 등지에서 궐기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해 2월 25일부터 27일경까지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손병희ㆍ권동진(權東鎭)ㆍ오세창(吳世昌) 등과 만나 독립운동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승낙하였다.
참고문헌
ㆍ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kh2.koreanhistory.or.kr/)
ㆍ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
ㆍ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www.encykorea.com/EncyKorea.htm)
ㆍ민족문화협회 민족운동총서 편찬 위원회, 『민족운동총서 제 2집 : 三一운동』,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0.
ㆍ김윤환 외 9명, 『독립운동총서-2 : 3.1운동』, 민문고, 1995.
하고 싶은 말
성심성의껏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