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금오신화의 전등신화 모작론에 관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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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 금오신화의 전등신화 모작론에 관한 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 서 론


● 본 론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전등신화≫(剪燈新話) 모방설
-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비교를 중심으로


《금오신화》(金鰲新話)와 《가비자》(伽婢子)의 관계
- 내용 연구를 중심으로



● 결 론


●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전등신화≫(剪燈新話) 모방설
-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비교를 중심으로

『금오신화』의 『전등신화』 모방설은 김안로(연산조 1481-1537)를 필두로 하여 시작되었다. 김안로는 『금오신화』의 내용이나 체제가 『전등신화』의 그것과 비슷함을 들어 모방설을 주장했는데 그가 지은 『용천담적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동봉 김시습이 어릴 적부터 벌써 시를 잘한다는 이름이 있었다. 번잡한 것을 벗어버리고 머리를 깍고 중이 되어서 이름을 설잠이라고 고쳤다.…중략… 시가 정중하여 소순기가 적었다. 금오산에 들어가 글을 지어 석실에 감추어 두고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나를 알아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그 글이 대개 기이한 것을 기록하여 뜻을 붙여 전등신화 등 작품을 모방한 것이다.

◈ 시대적 배경
『금오신화』의 『전등신화』 모방설에 관한 근거로, 먼저 시대적으로 “김시습이 살았던 15세기 후반은 중국과 우리가 격차를 보였다. 중국에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의 변화가 나타나고 소설의 발전을 보았으나, 우리 사회는 아직 중세후기에 머물렀다.” 그리고 "중국의 사대기서, 오재자서 등이 모두 어느새 수입되어 민중의 문예에 많은 충동“을 주었는데 이 때 김시습도 이때 중국의 문어체 소설인 『전등신화』를 보고 그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전등신화』는 김시습의『금오신화』(1470) 외에도 일본의 『가비자』(1666), 월남의 『전기만록』(1509-1547) 등 전기소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이를 보면 그 시기에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주변국으로 전파되어 모방, 계승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내용상의 유사성과 반박
이 네 작품간 공통점과 특징들을 살피면 『전등신화』가 『금오신화』에 미친 영향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특히『금오신화』는 위 세 작품 중 가장 『전등신화』와 창작연대가 가깝고 일본의 『가비자』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있어 더욱 『전등신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먼저 『전등신화』와 『『금오신화』를 내용상으로 비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