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 종군위안부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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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노인복지] 종군위안부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면서
2. 종군위안부란?
3. 종군위안부 어른들의 실상
4.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
5. 위안부 노인의 현재
6. 정대협의 활동
7 .배상 및 지원
8. 문제점
본문내용
종군위안부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1. 들어가면서..

탤런트 이승연씨가 ‘종군위안부’를 주제로 삼은 누드 영상 화보를 찍고 이를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 유료 서비스하기로 하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32명을 비롯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한국여성단체연합·나눔의 집·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대구시민모임 등은 12일 공동성명을 내고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모욕과 수치심을 주는 상업주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이씨의 ‘위안부’ 테마 프로젝트 중단을 강력 촉구했다. 이들은 “진정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피해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면 이를 주제로 한 누드 촬영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누드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다루면서 한·일관계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씨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제의식 없이 진행됐던 누드 사진에서 탈피해 종군위안부라는 의미있는 주제로 여인의 삶을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는 종군위안부를 성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상업적 목적이었으면 굳이 이 주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서 “당시 위안부들이 겪었을 고통을 표현하고, 그분들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기사-

종군위안부는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하였으며, 전후에도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 여성들이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각국 피해자들과 민간 단체 및 정부, UN을 비롯한 국제기구가 일본에 진상규명과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2. 종군 위안부란?

1) 정의
일본군위안부는 오랫동안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시대 노동인력으로 징발되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 중 ‘여자근로정신대’의 일부가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하였으나 두 제도를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혼용되어 쓰이는 용어가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이다. 이는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위안부라는 의미로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감추려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다.
현재 공식적인 용어로는 한국,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UN 등 국제기구를 포함한 영어권에서는 ‘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가 쓰이고 있다.
한국 관계법령에서는 라고 사용하고 있으며 1998년 유엔 인권소위원회 특별 보고관의 보고서에는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종군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종군 위안부(從軍慰安婦, 영어: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또는 일본군 성노예(日本軍 性奴隸, 영어: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s)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하여, 강제·집단적으로 또는 기만에 의해 징용되어 성적인 행위를 강요 받은 여성을 말한다. 위안부의 대부분은 일본인과 조선인이었으며, 중국인과 대만인도 희생되었다. 그밖에 필리핀, 타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일본이 점령한 국가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생존한 사람들은 하루에 30번 이상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증언하였고, ‘일본군 위안부’피해국 중 유일한 서양국가인 네덜란드의 얀 할머니는 1990년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세계최초로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당시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얀 할머니는 KBS다큐멘터리 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의 성폭력을 피해 달아났지만, 다시 잡혀왔다는 증언을 한 바 있다.얀 할머니의 고백이후 엘른 판 더 플루흐 할머니도 일본군 종군위안부였음을 증언했다.

2) 추정인원
일본군 위안부 총인원은 정확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쥬오대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계산법에 의하면 약 2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3. 종군위안부 어르신들의 실상

1) 실상
일본은 만주사변(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 발발)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늘어나는 주민 강간과 성병을 막고 군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 하에 ‘군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다. 일본군이 군 위안소를 만든 시기는 1932년경이며 본격적으로 설치한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말부터이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목적, 관리감독, 위안부 동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실행했다.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은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 총 숫자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 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동원되었으나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