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 수성지 작품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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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문학] 수성지 작품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작품개요』
1. 작가 林悌
2. 줄거리
3. 등장인물
『작품 분석』
1. 愁城의 의미
2. 심성가전체
3. 愁城誌의 풍자
Ⅲ. 결론

본문내용
Ⅰ.서론

는 白湖 林悌가 지은 「林白湖集」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이 글의 본론에서는 수성지의 작품개요에서는 수성지와 관련된 임제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작품분석에 들어가서는 수성의 의미와 심성가전체로서의 분석, 그리고 의 풍자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리하여 의 작품으로서의 개괄적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본론

『작품개요』

1. 작가 林悌

임제(林梯:1549~1587.조선 중기의 시인, 문신)는 호를 白湖 자를 자순이라고 하며, 을사사화가 있은 지 4년이 되는 명종 4년(1549), 호남의 사족 나주 林氏의 본관 회진에서 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 임붕은 기묘사화의 부당성을 상소하고 후에 문과로 경주부윤을 지낸 명현이며, 부친 임진은 무과로 후에 병마절도사와 훈련원 판관을 지낸 청렴 강직한 무인이다. 그의 가계를 살펴보면 대대로 무장이 많고 기절이 있는 집안으로, 호방한 기백을 자랑하는 성품을 가진 자가 많았으며 임제 역시 그러한 호방한 성품을 지녔다.
그의 성장기에는 권력의 횡포와 사화 등으로 중앙의 정치가 어지러웠을 뿐 아니라, 그가 6살 되던 해(명종 10년, 1555)에는 그의 고향 호남 일대에 왜구가 침도한 을묘왜변이 일어나고, 11살 되던 해(명종 14년, 1559)에는 황해도에서 농민의 난이 일어나 수년간 계속되는 등 봉건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혼란한 정국이 계속되었다. 이후 청년기의 임제는 자유분방한 한 때를 보낸다. 임제는 사화 와중에 부친과 다름없는 중부가 거듭된 정치적 불행을 겪은 데서 오는 정신적 상처와 이를 초래한 혼탁한 정치 현실 내지 암담하고 답답한 정치 풍토에 대한 불만에 의해 분방, 호일한 열정 속에서 만랑, 자적하면서도 남모를 ‘비가강개’(悲歌慷慨)에 젖어들었다.
그 이후 29세 되던 해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9세가 된 해(선조 9년, 1577)에는 마침내 대과에 급제하게 된다. 사림의 정치적 승리가 굳어진 이 시기 조정에는 많은 인재가 관직에 진출하여 각축하고 있었고, 백호 역시 뒤늦게 출사하여 자신의 경륜과 재능을 마음껏 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포부를 벼슬살이 동안 한 번도 펴보지 못한다. 이 무렵 정치 이상보다는 권세와 명리를 위해 무리를 이뤄 동서 붕당간의 당쟁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당쟁의 혼란속에서 그에게 남겨진 것은 소외와 고독 속의 어려운 벼슬살이 뿐이었다. 결국 그는 주로 절도사의 부관인 북도병마평사를 거친 후, 해남현감으로 잠시 머물다가 다시 평안도 도사로 보임하는 등, 관북 ․ 사를 주로 한 변방의 외적을 전전하는 힘든 벼슬살이를 살게 된 것이다. 는 이처럼 힘든 벼슬살이 시기에 지어진 작품이다. 당시 저술 배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남아있다.

北評事로부터 西評事로 옮길 적에 御史의 전도를 일부러 범하여 탄핵당하였다. 를 지어 평생동안 기이하고 큰 일이 많았음을 보이었다.「澤堂續集」권1, 28장, “自北評換西評, 故犯御史前導見劾. 著愁城誌, 以自平生奇偉事甚多”


위의 글은 澤堂 李植이 밝힌 임제의 제작 동기이다. 위의 글을 보아 ‘탄핵당한 사실’과 ‘愁城誌의 저작’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당시에 탄핵당한 일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자신을 입장을 보이기 위해 를 지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의 알레고리와 諷刺 ,권순긍,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 도서출판 박이정, 2005 , p23

그러다 임제는 그 사이 지병이던 폐병이 깊어져 명까지 단축하게 되어 그의 재능과 포부에 비해 불우하고 험난한 벼슬길을 보내게 된다. 임제가 아까운 재능을 변방 외적에서 소모하여 불우하게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율곡과 성혼이 그를 홍문관 내직으로 발탁한 것은 그의 나이 37세 경 말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때였다. 결국 오랜 병마와 객고에 시달려 온 임제는 이미 피폐해진 터라 얼마 안 있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임제의 생애를 살펴보면 성리학 전성기인 그 시대에 임제는 성리학의 형식적 논리와 당시의 도덕관념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임제는 유교적 규범에 얽매인 형식 논리와 권위성을 표방하는 성리학을 따르는 사림의 사고방식과 체제를 거부한 것이다. 많은 선비들은 그를 법도 밖의 사람이라 하면서 그에게서 문장만을 취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줄거리


참고문헌
「白浩全集」, 임제 저, 신호열 임형택 역주, 창작과비평사, 1997,

의 알레고리와 諷刺 ,권순긍,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 도서출판 박이정, 2005

고전문학: 의 구성적 특징과 작가의식, 문범두, 한민족어문학회, 1996

16세기 후반 소설사 전환의 징후와 , 김현양, 한국고전문학회, 2003

의 3단 구성과 그 의미, 윤주필, 한국한문학회,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