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 1910년대 소설의 다양성에 관한 고찰 -작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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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문학사] 1910년대 소설의 다양성에 관한 고찰 -작가를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연구목적



Ⅱ. 연구내용
1. 민족주의의 신채호
2. 주체적 인식의 박은식
3.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본 현상윤
4. 반봉건성과 계몽의식의 이광수
5. 친일적 현실 수용의 안국선
6. 친일적 근대성을 보여준 최찬식


Ⅲ. 맺음말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주체적 인식의 박은식
박은식은 무엇보다도 전통사상의 토대 위에서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신사상을 수용한 작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박은식은 주자학이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학문적 경직성으로 파악하고, 조선후기 주자학의 주요 쟁점이었던 예송논쟁(禮訟論爭)과 사문난적(斯文亂賊)을 주자학파의 폐단으로 지적하며, 주자학이 경직되면서 현실 변화에 적극 대처하는 활발한 사상으로 거듭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사문난적이란 이름으로 사상을 속박하고 언론을 억제하는 학문 풍토로 인하여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서양보다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박은식은 또한 유교가 이미 낡아 당시의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만한 힘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교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유교를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박은식은 유교가 현실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하며, 제왕 중심의 지배자 철학에서 벗어나 공자의 대동사상과 맹자의 민본주의로 환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민중 중심의 유교로 개혁하여 불교나 기독교처럼 민중교화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유교가 구습을 벗고 새로운 평등시대에 부응하는 사상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도 아울러 펼쳤다.
박은식의 문학작품은 1909년경부터 1912년경까지 3~4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쓰여졌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가 지녔던 사상을 그의 작품에 마음껏 펼쳤던 시기였다.『서북학회월보』 제1권 제16호(1909.10)부터 제19호(1910.1)까지에는 매호마다 「담총(談叢)」,「가담(街談)」 또는 「가조(歌調)」,「항요(巷謠)」등의 제목으로 몇몇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이장자(耳長子), 춘몽자(春夢子), 지언자(知言子) 등의 필명으로 혹은 무필명(無筆名)으로 발표된 이 작품들은 모두 구한말에 박은식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작자를 박은식으로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북학회월보}는 주필인 박은식에 의해 편집되었으므로, 여기 실린 필명 작품들을 박은식이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장자(耳長子), 춘몽자(春夢子), 지언자(知言子) 등은 모두 한 사람의 무필명(無筆名)으로 추정되는데(가령 16호에 실린 과 17호에 실린 은 그 내용상 분명히 전후편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작품임에도, 그 작자는 각각 이장자(耳長子)와 우시자(憂時子)로 되어 있다.)그렇다면 이것은 편집자인 박은식이 여러 필명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 준다는 점이다. 셋째,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자연히 밝혀지겠지만, 박은식의 사상이 작품들에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은 작중화자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듣게 된 ‘거리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은 이야기를 듣게 된 상황이 먼저 소개되고, 그 다음에 주로 문답식 대화로 되어 있는 거리의 이야기를 적은 다음, 끝으로 작중화자가 그런 이야기에 대한 논평을 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들 중「담총」의 서두와 말미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于時에 耳長子가 惆然 懷抱 難裁야 短杖洋鞋로 街頭에서 逍遙ㅣ 越便蒼林 속에 何許 二個人이 오면가면서 酬酌 소ㅣ에 ... 자서히 注視니 달깍거리 나무신과 팔낭거리 널분소ㅣ 모양이저 건너 사이데.
... 耳長子가 此設을 聞고 骨寒膽戰야 寢食을 渾忘얏도다. 大抵全國內生活이 目下岌業은 加議 바ㅣ 無나 況京城內同胞諸氏야 亦有耳有目지라 貧家生活이 節檢것이 最上策이거 朝夕을 難繼면서도 奢侈 여전코자니 諸氏의 今日生活程度가 能히 如前保持 수 잇가... 박은식, 「담총 -갑을문답(甲乙問答)」,『서북학회월보』, 1909.10. pp.52~54.


이 작품은 작중화자인 ‘이장자’가 거리를 거닐던 중 일본인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 놓은 다음, 그에 대한 느낌을 적고 동포들을 경계하는 말로 끝맺음되어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구한말 단형서사의 전형적인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이러한 구성방식은 「가조」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있다. 다만 이들 작품의 경우에는 작중화자가 항요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노래를 고쳐 부른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 부분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汽車 가자고 열두고동만 트데
정든님 잡구서 헌화수작만 누나
聞者 曰 갈길은 못가도 정든님만 잡고 수작면 잘될일 자연 생길가 참 정신업 손드리로군 此 改良야 曰
汽車는 가자고 열두고동만 트데
國家前途를 생각니 갈길이 망연고나
열어분 우리나라 이 교음사치로 오날 이 지경 안되얏소 이전 글언소ㅣ 좀 그만두고 내 소ㅣ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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