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

 1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1
 2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2
 3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3
 4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4
 5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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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1)몰락한 양반들의 등장
2)몰락한 양반들의 대응방법
3.결론
본문내용

1.가난한 선비는 서울로 올라와서 벼슬아치들을 살피고 공론을 들어보아 결백하고 명망이 높고 뛰어난 재주에 도량이 넓은 어떤 대부에게 귀의 귀의(歸依), 믿고 따른다는 뜻의 불교 용어.
하기로 작정하고는 용모가 추악하여 축에 끼지도 못하고 시집갈래야 누가 데려가지도 않을 계집종을 하나 골라 비부쟁이 계집종의 남편
로 현신 현신(現身), 지체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뵘
하고 문하에서 청소나 한 것이다. 위의 책 상, [嶺南 寒士], p.136


이 이야기는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여기서 가난한 선비는 결혼까지 한 상태이다. 그런 선비가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 거짓으로 부잣집에 들어가 계집종과 결혼까지 한 것이다. 그래도 양반인데, 돈을 벌기위해 상업과 농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종의 남편까지 되는 건 놀라웠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가난을 타개하고자 한 이의 노력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해쳐나가려고 노력을 한 것이기에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2-2)현실에 순응
1.“얘들아, 이 죽을 먹겠니? 우리 세 사람이 간신히 주림을 참는 데 엿새동안의 공부가 있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웠다. 전공(前功) 이전에 세운 공로나 공적.
이 가석하지 몹시 아깝다.
않느냐? 지금 이 죽 한 그릇을 받아먹고, 저 이가 계속 가져다 준다면 좋겠지만, 내일부터 매일 치욕을 어찌 다 당하겠느냐?” 위의 책 중,〔燻造幕〕, p.67


여기에서는 몰락한 양반이 집이 가난해 밥을 빌어먹고 사는데 후에 양반이라는 신분의식 때문에 밥을 빌어먹고 사는 치욕스러운 생활대신 죽음을 택하는 내용이 나온다. 참으로 안타깝고 이런 사고방식을 깨지 못한 양반들의 인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단순히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해쳐나가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을 해야 할까? 하지만 단순히 비난을 해서는 안 되는 문제로 생각이 된다. 그렇담 그 시대상을 잘 못 읽은 것이다. 그 시대에서는 물론 생각을 뛰어넘어 양반이라는 신분을 생각 안하고 일을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양반신분을 지키려고 노력한 자도 마냥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 어찌보면 자기 자신의 대한 , 양반의 대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한 노력으로 보여지기에 비난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이다.

2-3)추노를 행함.
이조한문단편집 中권을 보면 몰락한 양반들이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자신들의 옛 노예들을 찾아가 돈을 받아내는 추노를 많이 행함을 알 수 있다.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추노를 많이 행한 것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뚜렷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1. 서울사는 한 양반이 먼 시골로 추노(推奴) 도망간 노비를 수색하여 연행해 오는 것
를 나갔다. 그곳 원님과 절친한 사이라서 동헌(東軒) 지방 관아에서 고을 원(員)이나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사(水使) 및 그 밖의 수령(守令) 들이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에 앉아 장적(帳籍) 호적
을 열람하게 되었다. 노속들이 아주 번성해져 백여호에 이르렀고 낱낱이 요족하게 살고 있었다. 양반은 관가의 위세를 빌어서 노속들 가운데 유력한 자 10여 명을 잡아왔다. 남녀 도합 화명(花名) 노비의 성적(成籍:장부)을 화명이라 함.
에 오른자에 천금으로 속전(贖錢) 죄를 면하기 위하여 바치는 돈
을 정하고 10일의 말미를 주어 바치라 하였다. 위의 책 중, 〔徽欽頓〕,p.154


2. 평해에서 한 초라한 양반이 어린 머슴애와 계집애를 붙잡아 가는 것을 보았다. 머슴애와 계집애는 징징 울면서 끌려가고 있었다. 지성(해인사 중)은 애련한 마음이 들어서 양반에게 물어 보았다.
“ 저 머슴애와 계집애는 어떠한 애들입니까?”
“내가 서울서 평해로 노비들 신공(身貢) 조선 시대에, 노비가 신역(身役) 대신에 삼베나 무명, 모시, 쌀, 돈 따위로 납부하던 세
을 독촉하러 왔더니 노비들은 모두 죽고 아이 둘만 남았데. 그래서 장차 부려먹을까 하고 서울로 끌고 가는 길이네.” 위의 책 중, 〔解放〕,p.180


하지만 이렇게 추노 나간 대다수의 선비들은 봉변을 당한다. 하긴 노비들의 입장에서도 갑자기 양반들이 찾아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순순히 내놓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또한 양반은 가난함속에 초라해지고 자신들은 부를 쌓아 힘도 강하지 않는가.

3. 그날 밤 삼경에 수십명의 건장한 노속들이 양반이 거처하는 방을 전후로 겹겹이 둘러쌌다. 그리고 장정 수십명이 방안으로 돌입해서 양반의 멱살을 쥐고 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얼른 관가에 편지를 쓰되 집에 긴급한 사정이 있어 몸소 하직하지 못하고 여기서 바로 훌훌히 떠나가노라는 의미로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명은 이 칼에 달려 있다.” 위의 책 중,〔徽欽頓],p.155


4. 성명은 아무이고 모씨와 일가입니다.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로 궁색한 터에 연거푸 당상(當喪) 부모의 상을 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