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안동 화회마을(답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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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하회마을 소개

유형문화재

-징비록 (국보132호)

-하회탈(국보 제 121호)

-병산서원(사적 제260호)

-화천서원

무형문화재

-하회(河回) 별신(別神)굿 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 69호)

-하회(河回)선유(船遊)불꽃놀이
본문내용
하회마을


하회마을 소개

하회(河回), 말 그대로 물이 돌아간다는 뜻으로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휘감고 S자로 흐르며,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물도리동이라고도 불리는 하회마을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마치 연꽃이 물 위에서 꽃을 피운 듯한 형상이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
직하고 있는 이 마을에 조선시대 성리학자 서애 유성룡의 후손인 풍산 유씨를 비롯해서 광주 안씨, 김해 허씨 등의 종친들이 모여 살고 있다. 골목골목의 투박한 토담과 포장되지 않은 언덕길은 하회마을을 찾는 이에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듯한 느낌을 준다. 북촌에 이르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진 전통 한옥이 높은 축대 위에서 당당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것이 바로 풍산 유씨의 대종택인 양진당이다.
낙동강을 건너는 배에 몸을 싣고 바람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아픔을 후세에 경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했다는 옥연정사에 당도하게 된다. 바위 계단으로 올라 간죽문을 통해 정사로 들어가는데, 간죽문 주변의 대숲이 매우 아름답다.

유형문화재

-징비록 (국보132호)

임진왜란때 영의정으로서 도체찰사를 겸임하였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
선생이 임진왜란때의 상황을 벼슬을 떠나 귀향한 후에 기록한 것으로, 저자는 임진란의 쓰라린 체험을 거울삼아 다시는 그러한 수난을 겪지 않도록 후세를 경계한다는 민족적 숙원에서 책명을「징비록(懲毖錄)」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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