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서평] 당후반기 진사과와 사인들간의 사적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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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사서평] 당후반기 진사과와 사인들간의 사적유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지공거와 진사과 급제자의 관계
Ⅲ. 진사과 출신자들의 집단성
Ⅳ. 당후반기 사인들의 상호 유대관계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우리의 생각 속에 과거제도는 ‘실력위주’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다닌다. 그러나 처음 본고를 대했을 때 진사과를 둘러싼 사인들간의 사적 유대관계에 관한 주제를 보고 관심이 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 나라의 정치실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게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 몰락하는 대구부산 지역과 신흥 ‘부흥’을 맞이한 광주 지역 일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계 인사들의 많은 수가 전라도 출신으로 물갈이 한 것 또한 대통령과의 끊을 수 없는 ‘유대관계’때문이 아닌가? 이처럼 나는 유대관계에 관해서라면 당시 정치계의 부패상을 관찰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이 논문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고는 본인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관점이었다.
隋․唐 統一帝國의 성립과 더불어 성립된 科擧制度가 중앙집권적 관료 선발제도라는 것과 이 가운데 문학적 소양을 주로 평가하는 진사과는 매우 중요한 과목이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실이다. 실제로 進士科 출신자들은 점차 唐朝의 대부분 요직을 독차지하였으며 송대 이후의 과거가 진사과 단일체제로 전개되어 간 것도 이와 관련성이 깊다. 그러므로 唐代史나 科擧制度史와 관련하여 이 시기 進士科의 이해는 긴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진사과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이를 둘러싼 士人들의 紐帶關係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진사과는 사인들이 入仕수단으로서 효용이 컸고, 관료 선발제도로 현실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당후반기 진사과의 실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사과를 둘러싼 사인들의 동향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진사과는 붕당의 성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로 황제가 조정의 붕당을 없애기 어렵다고 한탄했던 이 시기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사적 결속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진사과를 깊이 이해하려면 사인들의 유대관계 속에서 이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Ⅱ. 知貢擧와 進士科 及第子의 關係
먼저 座主와 門生이라는 명칭에 관해 알아보자. 과거의 합격자들은 자신을 뽑아준 시험관을 座主로 또 스스로를 문생이라 일컬으며 서로간에 공고한 유대를 가졌는데 이 명칭의 기원을 알아보려면, 수․당대의 과거제도의 성격을 살필 필요가 있다. 원래 문생이란 말은 직접 배우지는 않았더라도 스승의 학업을 전수하는 이를 뜻했는데, 수대에는 문생이 태학의 학생을 일컫기도 했으며, 당전반기에 이르러서도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