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남북분단과한국전쟁]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22)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2. 이승만대통령의 희망과 현실
3. 미국의 참전과 북진
4. 한미군의 북한 점령
본문내용
한미유엔군의 북진공격
■ 한국전쟁의 개시와 미국
제2차대전후 한국전쟁전 시기에 아시아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국민당이 패배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아시아 각 국의 민족해방운동이 고양되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미소간의 밀월시대가 끝나고 냉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새로운 아시아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그 핵심내용은 소비에트의 팽창을 막고 소련의 지배와 영향력을 축소하여 궁국적으로는 소비에트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봉쇄’와 ‘반격’ 전략인 것이다.
당시 국무장관 에치슨의 설정한 소위 ‘에치슨라인’은 적어도 알류산열도와 일본열도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의 의미이지 남한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소련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전적으로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한 방위선은 아닌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 대만으로 쫒겨간 장졔스와 남한의 이승만 정권 모두 국민들로부터의 이반이 가속화됨으로써 정권의 기반이 매우 취약해 지고 이로 인해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는 전초기지가 위태롭게 될 것을 우려했으며, 오히려 이들을 제거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던 점에서 잘 나타난다.
그럼 미국은 북한의 공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는가? 적어도 정보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소련으로부터의 군수물자의 이동과 중국으로부터의 조선인부대의 이동 및 북한의 병력배치 상황 등에서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기관 역시 북한에서의 변화를 면밀히 파악하고 주시하면서도 전쟁발발의 긴박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워싱턴은 무엇보다도 소련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바 역시 소련이 아직 전쟁을 벌일 시기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싱턴이 사태의 전개를 실제로 긴박하게 보지 않았는 지, 아니면 정치경제적 의도에 의해서 고의로 무시했는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