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사] 조선중기 역사인식 개관과 홍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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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사] 조선중기 역사인식 개관과 홍여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 중기 역사인식
1) 왜란 이전의 역사인식
2) 왜란 이후의 역사인식
3) 호란 이후의 역사인식
2. 홍여하
1) 생애와 학문경향
2) 『휘찬여사』의 편찬과 내용
3) 『동국통감제강』의 편찬과 내용
4) 역사인식
5)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조선 중기 역사인식
1) 왜란 이전의 역사인식
대외관계가 평화적으로 정착된 16세기에 들어와서는 부국강병정책이 권력자의 치부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따라서 이 시기의 과제는 자주성이라는 측면보다는 도덕성의 제고가 더 시급한 문제였고, 이 과제를 중앙정치와 향촌사회에 걸쳐 관철하려는 사림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16세기 사림들은 바로 왕도정치의 구현이라는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를 이해하려 하였고, 특히 자신들의 세력기반인 향촌사회의 주민들에게 도덕적 역사의식을 심어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목표 아래 씌여진 사서들은 이른바 사략형 사서가 널리 유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동국사략』은 이우, 박상, 유희령, 민제인 등이 각각 지은 것이 있다.그러나 이 중에서 지금 전하는 것은 박상과 민제인의 저서뿐이다.
박상의 『동국사략』은 『동국통감』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간략한 통사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책은 통일신라 이후부터 비로소 왕을 단위로 역사를 서술함으로써 통일신라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를 한반도에 비정하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신라 중심, 한반도 중심의 역사의식은 『동국통감』에서도 보인 것이지만, 『동국사략』에서는 그 농도가 한층 진하게 나타난다.
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동국사략』과 유사한 지리비정이 보이고 있어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중심지를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16세기에 거의 일반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동국사략』의 편찬연대가 확실치 않아서 양자의 선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박상이 죽은 것이 중종 25년이므로 『동국사략』이 『동국여지승람』보다 다소 앞설 가능성이 있다.
명종 초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유희령의 『동국사략』은 표제와 음주를 붙인 것이 가장 특이하다. 표제란 주요 사건의 제목을 저자가 따로 만들어 책의 상단에 기록한 것이며, 음주란 고거의 음을 『운해군옥』에 의거하여 주석을 단 것을 의미한다.
유희령의 『동국사략』은 통일신라를 독립시키지 않고 삼국의 맨 마지막에 신라사 전체를 묶어서 서술하였으며, 가락․발해․궁예․견훤을 신라사 다음에 부기하고 고구려사의 비중을 크게 높였다. 세조대 훈신들의 역사의식을 계승한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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