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상사] 황진이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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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상사] 황진이 고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目次

Ⅰ. 머리말
Ⅱ. 황진이가 妓生이 된 이유
Ⅲ. 황진이의 家系
Ⅳ. 황진이의 男性遍歷을 통해 살펴 본 황진이 思想
Ⅴ. 황진이의 특이한 遺言에 대한 고찰
Ⅵ. 맺음말

본문내용

1. 황진사의 서녀라는 관점

기생의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서도 기적에 몸을 담는 예는 더러 있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가문이 몰락하여 어찌 할 수 없게 되거나 당장 거금을 필요로 하는 긴박한 사태에 직면 할 때 자기 몸을 팔아 가족을 구하는 비상한 희생의 경우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소설의 경우를 보더라도 매창(청년회심곡)은 본래 민가 여자이었으나 가문이 몰락하여 부득이 기녀가 되었고, 채원(추풍감별곡)은 진사의 딸로 태어나 약혼까지 한 뒤 아버지를 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기적에 몸을 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황진이의 경우는 이들과 사정이 다르다. 김택영의『소호당집』에서 나타나는 이웃집 총각의 죽음 김택영의 『소호당집』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황진이가 15세 되던 해의 일화이다. 한 동네에 살던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던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총각의 상여가 황진이의 집 대문 앞에 이르자 말뚝처럼 굳어져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죽은 총각의 친구가 이를 황진이에게 알이자 황진이는 소복단장을 하고 달려 나가 자기의 치마를 벗어 관을 덮어 주었는데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이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충격을 받아 황진이는 이를 계기로 기생이 되었다고 한다.
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날 수 있는 것으로서 그녀가 기생의 길을 걷게 되는 하나의 계기는 되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이유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황진이가 기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에서 연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그녀가 서녀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문 좋은 집의 정실로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하는 점이다. 게다가 재색을 고루 갖춘 그녀에게 뭇 남성들의 시선이 분주하게 오갔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 두드러진 예가 이웃집 청년의 죽음이라는 설화로 나타나기도 한 것이다. 처녀의 몸으로 총각의 관에 옷을 벗어 덮어 주기까지 한 황진이는 여성으로서의 평탄할 수 없는 자기 운명을 예견 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기녀의 길을 갈 결심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들 수 있다. 사료에 따르면 진이의 성격이 척당하여 남자와 같다고 하였다. 당시 이 땅의 여성들은 속박의 생활 속에서 순종의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들이었다. 삼종지도《의례(儀禮)》〈상복전(喪服傳)〉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 여자는 세 가지의 좇아야 할 길이 있는데[女子有三從之道] /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在家從父] /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適人從夫] /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좇아야 한다.[夫死從子]

라는 미화된 사슬의 생활규범으로 인해 평생을 남성들의 예속물로 살아야 했던 죄 없는 죄인들이 바로 이 땅의 여성들이었다. 자칫 속박을 감수하지 못 했을 때 그들은 칠거지악 칠거지악(七去之惡)은 과거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유이다. 글자 그대로는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가지 잘못이라는 뜻이다.《공자가어》에 처음으로 이런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일곱가지 잘못은 다음과 같다.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 아들이 없음(無子) / 음탕함(不貞) / 질투함(嫉妬) / 나쁜 병이 있음(惡疾) / 말이 많음(多言) / 도둑질을 함(竊盜)

이라는 무서운 죄목으로 법의 중형이 내려졌다.
여기에 같은 여성이면서도 그 위치가 독특했던 존재가 기녀들이다. 기녀는 신분적 지위는 낮았으나 다른 부류의 여성들로서는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던 일면을 가졌다. 남녀 간의 접촉면에서 특히 그러했다. 가정이라는 속박의 울타리 안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잡다한 규범으로부터 초연한 위치에 있는 기류사회는 어쩌면 황진이의 성격에 알맞은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재색에 거문고와 노래와 시에 능한 그의 재기를 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기류사회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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