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사]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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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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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자본가계급과 국가 - 경영의 동업자
1) 전시통제
2) 사회적 연계
2. 이익이 우선
1) 경방: 전시하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을 융합
2) 전시 봉사로 얻은 보수
3) 요약
본문내용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조선실업구락부를 설립하고 운영- 한상룡
구락부가 표방한 목적: 법으로 설립된 공적인 상공회의소와는 달리 회원들이 비공식적으로 우의를 다질 목적으로 어울리는 사적'친목단체'였음
구락부의 시설은 넓었고, '친목단체'라는 목적에 맞게 설계, 특별 토론회 후원, 일어판 월간지 발간
상공회의소와 달리 실업구락부는 서울 바깥에 지부가 없었다-엘리트성향, 매우 배타적인 중심부 지향의 조직
구락부의 엘리트주의와 '클럽적 성격'은 식민관료를 위한 회원들만의 오찬이나 간친회와 같은 구락부의 사교행사에 반영
⇒한국인들이 주도적으로 설립한 실업단체가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인 자본가계급이 1930년대에 식민지체제 속에 얼마나 잘 편입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줌
한상룡 [韓相龍, 1880~?]
조선 후기의 인물로 국민총력연맹(國民總力聯盟) 사무국장을 지내는 등 친일 행위를 하였으며, 해방 이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심판을 받았다.

본관 청주(淸州)
국적 한국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한확(韓確)의 후손이자 한말의 친일파의 거두인 한희교(韓喜敎)의 아들이다.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조선총독부의 고위 관리들과 교유하였다. 또한 총독에게도 신임을 얻어 국민총력연맹(國民總力聯盟)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후 비행기 헌납기금 조성사업, 지원병제도 창설, 근로자 징용 등 여러 친일 행위를 하였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심판을 받았으며, 이후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1930년대 중엽~1945년까지 김연수의 지휘 아래서 사업을 확장, 당시 일본은 조선을 대륙 진출을 위한 '전진병참기지'로 만들려는 중요한 공업적 변환을 급속히 진행
종전의 정책에는 적어도 초기에는 군사적 목적만큼이나 경제적 의도도 있었음
1919년 일본은 공인된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참석, 2년 후 조선을 새로운 제국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개발하여 지리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의미에서도 아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일본의 대동맥으로 만들 방안 적극 모색
1931년 관동군의 만주 침략 및 만주국 수립과 더불어, 조선을 그 북부 인접지와 경제적으로 통합한다는 총독부의 정책은 재확인&확고해짐. 또 도쿄에서 수립되고 있던 포괄적인 제국정책의 중심 요소로서 조선이 부여받은 중요성 커짐
"세계경제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일본과 만주 경제의 더 밀접한 통합"방향으로 조선의 공업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