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1962년 북한, 중국의 `국경밀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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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사]1962년 북한, 중국의 `국경밀약`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조·중 변계조약(邊界條約)이란?

2.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비밀스럽게 만들었나?

3.중국의 입장과 그들의 진심이란?

4.밀약이라 해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나?


본문내용
3.중국의 입장과 그들의 진심이란?
문서 상으로는 1964년 3월 중국의 천 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외무상이 베이징에서 의정서에 사인함으로써 압록강-백두산-두만강을 잇는 현재의 국경선이 그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65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다시 북한과 중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홍위병들은 김일성을 비판하고, 이에 북한도 격분하여 중국대사를 추방하고, 서로 국경선에서는 총격전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9년 김일성이 돌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것은 단순한 정치광고였을 뿐이었다. 중국학자들의 심상치않은 견해들도 문화대혁명 이후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히려 1962년 국경협상에서 중국이 파격적인 양보를 해서 대만정부가 중국을 공격하는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중국의 파격적인 양보 주장이 나온 것일까. 먼저 1712년에 조선과 청나라에 합의에 세워진 백두산정계비를 세웠을 때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기에 당연히 중국땅에 속하는 것이고 1962년 조약에서 이를 무시하고 일부를 북한에 할양했다는 의견이다. 두 번째로는 중국이 협상과정에서 두만강의 원류로 제시한 곳은 ‘석을수’였는데, 북한은 이에 맞서 최상류인 ‘홍토수를’ 경계로 하자고 맞섰다. 결국은 북한의 의도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