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무로마치 문화와 전국 동란, 그리고 남만인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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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일본사] 무로마치 문화와 전국 동란, 그리고 남만인의 도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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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사] 무로마치 문화와 전국 동란, 그리고 남만인의 도래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문화


Ⅱ. 센고쿠시대(戰國時代)와 다이묘


Ⅲ. 남만인의 도래와 문화와 기술 전래

본문내용
Ⅱ. 센고쿠시대(戰國時代)와 다이묘

ⅰ. 센고쿠시대
1)센고쿠 시대
센고쿠 시대 (戦国時代)는 일본의 15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의 사회적, 정치적 변동 및 계속되는 내란의 시기이다. 전국 시대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아시카가 쇼군의 무로마치 막부가 명목상 존재하고 있었으나 많은 다이묘들, 특히 교토에서 멀리 떨어진 다이묘들은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까지 중국과의 무역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고 화폐의 사용이 늘어났으며 상업도시들이 탄생하였으며, 농업과 소규모 제조업의 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방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특히 15세기 초의 지진과 기아와 같은 자연재해들은 채무와 조세에 시달린 농민들의 봉기로 센고쿠 시대로의 이행을 가속화했다.
경제적 문제에 쇼군 계승 논란이 겹쳐져 일어난 오닌 전쟁(1467년-1477년)은 일반적으로 센고쿠 시대의 서막으로 간주된다. 이 전쟁에서 호소카와씨(細川氏)가 주축이 된 동군과 야마나씨(山名氏)가 주축이 된 서군은 교토 근방에서 11년간 교전하였으며 다른 구니들로 곧 전쟁이 확산되었다.

ⅱ. 주요 다이묘

1) 다케다 신겐 (武田信玄) [1521.12.1~1573.5.13]
센고쿠 시대 무장 겸 다이묘인 가이노쿠니의 슈고
법명은 신겐(信玄)이고 본명은 하루노부(晴信)이다. 관위는 종4위하. 대선대부로 위계되었다. 가이슈고(甲斐守護)를 대대로 역임한 가이겐씨다케다가(甲斐源氏武田家)의 적자로서 태어났다. 이웃국인 시나노(信濃)를 침공,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과의 가와나카지마의 전투(川中島の戦い)를 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시나노의 대부분을 평정했다. 가이, 시나노, 스루가(駿河), 니시 고즈케(西上野), 도토미(遠江), 미카와(三河)와 미노(美濃)의 일부 영지로 했지만, 상경 도중에 미카와에서 발병해서 시나노에서 병사한다.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 겐신과의 5번에 걸친 가와나카지마의 전투로 유명하다. 풍림화산(風林火山)의 군기를 사용하고, 가이의 호랑이라고 불리었다. 그가 이끈 다케다 군은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평해진다. 다이쇼 시대(大正期; 1912-1926)에는 종3위(從三位)에 추대되었다.

2)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1534.6.23~1582.6.21]
본성은 자칭 후지와라 씨(藤原氏)지만, 실제는 인베 씨(忌部氏)일 수도 있다. 가계는 오와리 슈고 시바 가문(尾張守護・斯波氏)의 사관인 오다 가문이다. 후루와타리 성(古渡城) 성주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의 차남 또는 삼남으로 태어났다. 노부나가는 적장자로 키워져 유아일 때 나고야 성(那古屋城) 성주로 부임하였다. 덴분 20년 (1551년) 급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독을 상속받지만, 동생 오다 노부카쓰(織田信勝; 오다 노부유키(織田信行))와 가독 다툼이 발생한다. 이에 동생 노부카쓰를 죽이고 가문내 혼란을 잠재운다. 이후, 적대세력을 차례차례 굴복시켜 오와리 국을 통일한다. 에이로쿠 3년(1560년)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를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에서 격파하였으며, 에이로쿠 10년(1567년) 미노의 사이토 가문을 제압하여 미노 국을 차지하였다. 그 다음해인 에이로쿠 11년(1568년)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를 쇼군으로 봉하기 위해 상경전을 개시하여 오미 남부의 롯카구 가문과 교토의 미요시 가문을 제압했다. 그리고,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쇼군에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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