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영남지방학]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한 선비 백불암 최흥원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옻골마을 위치 및
마을 전경 소개
2. 최흥원 선생 연보
3. 백불암과 반계수록
4. 정려각
5. 옻골마을 역사관 소개
본문내용
1705년(숙종 31)∼1786년(정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초(太初) 또는 여호(汝浩), 호는 백불암(百弗庵). 대구 출신.
1778년(정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교관(敎官)이 되었고, 1782년 장악원주부를 거쳐 1784년 세자익위사좌익찬(世子翊衛司左翊贊)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침식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여 후에 칠계선생(漆溪先生)이라 일컬어졌다.
백성들의 살기 어려운 정상을 보고 남전향약(藍田鄕約)에 의거하여 규약을 세우고 강학(講學)과 근검으로 저축에 힘쓰게 하며 선공고(先公庫)·휼빈고(恤貧庫) 등을 두어 생활안정을 얻게 하였다.
이것이 당시의 유명한 부인동규(夫仁洞規)였다.
죽은 뒤 1789년 효행으로 정문이 세워졌고, 이듬해 승지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백불암집》 8권 7책이 있다.
● 1789년(정조 13)
6월 효행(孝行)으로 정문(旌門)을 받음.
● 1790년(정조 14)
정월 통정대부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 경연
(經筵) 참찬관(參贊官)에 증직(贈職).
반계수록 은 유형원의 실학적 개혁론을 집대성한 책
책완성 3년만에 유형원의 죽음으로 세상에 잘 알
려지지 않음
70년후 최흥원에 의해 교정작업이 이루어짐
1770년 대구감영에서 발간 세상에 알려지게됨
최흥원과 반계수록의 관계를 아는 사람 거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