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국문화의 이해] 신 베이징, 문화대혁명 시기 베이징과 상하이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신베이징의 빛과 그림자
1. 거대한 베이징성의 죽음
2. 북방의 특대도시 신베이징의 탄생
3. 신비하고 우아한 과거의 공간 사합원
4. 고도의 풍모를 지켜라
5. 신베이징의 두 얼굴, 후퉁과 대원
문화대혁명 시기의 베이징과 상하이
1. 폭풍의 중심이 된 베이징
2. 상하이방의 결집과 극좌문화의 창궐
3. 시민 문화와 혁명 문화의 충돌과 저항
본문내용
2. 북방의 특대도시 신베이징의 탄생
- 중국 최대의 문화의 중심, 베이징
• 혁명과 행정의 강력한 힘을 동원하여 전국의 문화자원을 집중
• 1952년 전국 대학 조정 조치를 거쳐, 베이징의 대학 수는 상하이를 넘어 일거에 전국 1위에 오름
• 문화 사업의 조정에 의해, 중국 최대의 문화 기지로서의 상하이는 쇠락의 길을 걷고 베이징이 역전
• 베이징은 정치 중심의 특수성을 빌어, 거의 무제한으로 전국의 우수한 인재를 빨아들임
- 그러나, 베이징은 문화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건설은 도시계획 상에 전혀 없었음
• 엄격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문화시설과 독립된 문화 구역, 상징성 있는 건축물이 없음
⇒ 베이징을 진정으로 환골탈태하게 만든 것은 공업화
• 쑨원의 부인 쑹칭링 여사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저택의 후원에도 소규모 고로(高爐)가 만들어짐 “분진이 날아다니고 기계음이 크게 울리는” 이 모습은 곧 베이징의 당연한 일상
•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70년까지가 가장 격렬 → 1976년에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뒤에도 정책의 변화는 보이지 않음 → 1980년대, 베이징은 마침내 ‘종합적 산업 도시’가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선언
- 그러나, 공업화의 결과 여러 문제점이 발생
• 도시면적의 팽창과 인구의 증가로 인해 물, 흙 등 자연 자원의 심각한 부족을 초래함
• 도시기능의 정비는 뒤처지고, 환경은 악화 일로에 놓임
• 도시 자원의 배치 및 지역 공간의 불균형은 천안문을 중심으로 한 도심부에 부담을 안김
3. 신비하고 우아한 과거의 공간 사합원
- 라오베이징의 생활 방식인 ‘경미(京味)문화’
• 상하이의 시민 문화와 달리, 자급자족적이고 폐쇄적인 향촌 예속 사회의 색채 위에 성립됨.
• 베이징이 거대한 공업 도시로 거듭남과 동시에, ‘경미문화’는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됨
- 사합원
• 라오베이징의 생활의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