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사] 중세수도원과 도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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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독교사상사] 중세수도원과 도미니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중세 수도원 태동의 배경과 발전
Ⅲ. 도미니크 승단
Ⅳ. 나가는 말
본문내용
수도생활이라는 말은 세상과 연락을 끊고 인간적인 애정과 세상의 보화와 자유 등의 포기를 요하는 희생의 생활이며,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봉헌의 생활로서, 헬라어의 모노스(μονος; ‘홀로’, ‘고독한’의 뜻)에서 유래된 말이다. 중세의 수도원 운동이 시작된 배경은 기독교 내부와 외부의 원인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중세 기독교 수도원 시작의 내부적 원인은 기독교 금욕에 숨겨져 있다. 신약 성경에는 부분적으로 금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러 주장과 설명이 들어 있다(막 6:7-9; 10:17-31; 마 19:10-12; 눅 12:22-31 등). 이 내용에 속하는 것이 신약 성경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시켜서, 이 세상은 일시적인 것이요 덧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부분이다(고전 7:31). 이처럼 초기 기독교의 복음에서 전해주는 내용들은 금욕적 삶을 추구하는 형태를 낳게 되었으며, 기독교 금욕주의는 기독교 수도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다음으로 중세 기독교 수도원의 외부적 원인은 정치적, 사회적 등의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A.D.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밀란의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후 교회의 영적 생명력은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300년 동안, 로마 정부의 계속적인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군림하는 종교로 탈바꿈하자, 무사안일한 평화를 누리는 교회로 변모하게 되었고 그러한 현실을 보고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를 사단의 올무로 여기게 된다. 그 당시 교회 사정을 성 바실리오(St. Basilio)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는데, “교부들의 사상은 무시되고 새로운 사상이 교회를 흔들고 있다. 사람들은 신학적이기보다는 속이는데 관심을 드고 이 세상의 지혜가 존경되며 십자가의 자랑을 대신하게 되었다. 목자들은 쫓겨나고 탐욕스런 이리떼가 양들을 치려고 들어왔다. 기도의 집에는 사람이 없고 사막은 우는 자들로 가득 찼다.”라고 말하고 있다. 참조. 장갑수, “중세 수도원 운동 연구”, (군포: 한세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6.
영적인 측면이 간과되고 예전적이고 외형적인 측면이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제국하의 교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겠는가?” 라는 당시의 질문에 대해 많은 이들은 수도원적인 삶에서 해답을 찾았다. 많은 이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사회를 떠나 시험의 빌미를 주는 육체와 정욕을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