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근대 세계를 나 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진기행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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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 세계를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
-무진기행을 읽고-
Ⅰ. 당시의 시대상과 [무진기행]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친 1960년대는 민주화와 군사혁명으로 이어지는 정치적격동기였다. 산업화 초기의 시기에서 많은 청년들이 실업자의 위치로 전락했으며, 정신적 방황과 경제적 공황을 한꺼번에 겪어야 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방황하는 당시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나’는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Ⅱ. 무진의 공간성과 현대인의 소외
‘무진’이란 공간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어느 곳을 보던지 뚜렷함이 없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는 앞서 말한 젊은이들의 방황이란 맥락과 일치하는데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위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안개가 주는 무기력과 권태의 이미지는 그대로 주인공인 ‘나’에게 투영되며 단조로운 생활과 아내에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상태를 대변하기도 한다. ‘무진’은 그런 공간으로 ‘나’를 몰아넣음으로써 자신의 상황에 대한 각인과 새로운 경험이라는 ‘자아찾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아내에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가 무력하며 세상에 물들어버린 자신의 삶을 인식함으로써 다시 서울로 돌아가 진정한 ‘삶’을 찾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무진’이라는 공간뿐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 이미 속해있는 사람들 역시도 ‘나’의 자아 찾기에 도움을 준다. 그 공간 안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예상되는 자신의 모습까지도 한꺼번에 발견하게 된다. ‘박’에게 순수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조’에게는 현실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그리고 ‘하인숙’에게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갈등, 즉 순수함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하인숙’은 ‘나’를 따라 무진을 벗어나려고 한다. 무진의 주류적인 분위기인 허무와 고뇌,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하인숙’의 모습은 현실에서 갈등을 느끼며 다른 세상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의 모습과 일치한다. 그들이 열망하는 것은 ‘서울’로 대표되는 좀 더 나은 미래와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은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무진은 탈 일상의 공간이다. 이 두 개의 공간이 충돌하며 일으키는 갈등과 허무주의 사이에서 ‘나’의 선택은 결국은 서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진이 가진 탈 속세적인 성향은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가치가 중시되는 서울과는 달리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 주인공인 ‘나’가 겪은 세상은 무진처럼 꿈과 같은 의미가 아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현실 안에서 길들여진 ‘나’에게 무진을 통해 새로운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은 단지 인식에만 그칠 뿐이다. 그 인식이 발전되기도 전에 ‘나’는 다시 서울로 떠나버리게 된다. 그가 하인숙과 무진을 택하는 것은 그가 가지게 될 하나의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무진에서 자아를 확인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는 서울이 주는 안정감과 힘을 신봉한다. 그리고 많은 현대인들이 그렇듯이 그는 이미 그런 서울의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인식하고 양심상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무진을 떠나지만 서울로 돌아가면 이내, 축축한 안개와 어두운 과거가 있는 무진을 기억 속에서 덮어두게 될 것이다.
근대에서 ‘나’를 찾고 살아가는 일이란 [무진기행]의 주인공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서울의 밝고 안정된 이미지와 안개로 대표되는 몽환적이고 조금 더 원시적인 이미지의 무진 사이에서 우리는 당연히 서울을 택한다. 서울이 의미하는 일종의 ‘상류층’이라는 상징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그 곳이 우리의 일상이 진행되는 공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의해 ‘소외’의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서울에서도, 또한 무진에서도 이방인으로 느끼는 ‘나’와 우리가 사회에서 느끼고 있는 소외감은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자신이 가져야 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가 그런 개인을 붙잡아주지 못하면서 자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6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와는 인간의 소외감을 더욱 확대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도시에 정착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 그리고 순수했던 시절과의 단절을 경험한다. 하지만 도시에서 겪게 되는 많은 고난과 상처는 또 도시 자체에서의 소외와 단절을 일으키게 된다. 본질적인 인간다움과 자아를 잃게 된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고향에서도 이미 그들은 이방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진기행]의 ‘나’와 같이 두 곳 중 한 곳을 택해야 한다. 한 곳이 현실이 되면 다른 한 곳은 지향점이나 환상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무진기행]의 나는 좀 더 안정되고, 과거와의 자신과 단절되는 ‘소외’를 선택한다.
Ⅲ. 근대사회를 나로써 살아가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