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상사 - 중국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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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상사 - 중국의 불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국철학사상사
- 중국의 불교
저는 이번 발표에서 중국 불교가 인도나 한국과는 다르게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기본개념과 중국 불교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후, 중국의 공산화 아래서 중국 불교가 어떠한 상황을 겪었으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 다음 발표를 준비하며 생긴 두 가지의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변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소승불교가 과연 대승불교에 비해 열등한가? 에 대해서 동북아의 현실과 관련해 답을 했습니다. 다음으론 중국 불교의 전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덧붙였습니다.
첫 번째로 간단하게 불교 용어 개념을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업’이란 전생의 소행으로 인해 현세에 받는 응보를 가리키고, ‘고’란 사람이 인과응보의 원리에 의해 받게 되는 고통을 뜻합니다. ‘각’이란 깨달음을 통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말합니다. ‘열반’이란 진리를 체득해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한 최고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또한 ‘윤회’란 중생이 지은 업에 따라 생이 반복되는 것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다음으로 ‘소승’과 ‘대승’입니다. 소승이란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자리적 이상을 추구합니다. 반면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다만 소승이란 대승불교에 의해 폄하된 단어로서 원래는 남방불교라고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소승불교는 아라한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각 개개인을 인도해 해탈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 유파에 해당합니다. 반면 대승불교는 일반 대중 즉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대승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은 해탈의 경지에 이미 이르러 열반이 가능하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아직 남아있는 존재를 일컫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승불교가 크게 발전해 왔습니다.
이제 불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불교는 기원전 5세기에서 6세기 경 인도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불타는 모든 생명은 과거의 업에 따라 윤회를 되풀이하며, 윤회의 사슬에 매여 있는 한 존재가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린다는 가르침을 설파했습니다. 존재가 윤회를 그치는 것이 곧 해탈이며 영원한 자아는 없다 즉 무아(無我)를 강조했습니다. 한편 앞서 얘기한 소승불교 즉 상좌부 불교가 원시불교로서 불교 초기에 성행했습니다. 그러나 상좌부 불교가 개인적이며 현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대승불교가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대승불교 내부에서 용수의 무자성공, 즉 스스로 독립해 존재하는 불변의 실체가 없다고 보는 이론이 발달하며 중관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다음으로 3기 불교철학에서는 아상가가 중관학파의 극단적 회의론을 부정하며 인식론적 측면에서 인간 인식의 내성을 인정했습니다.
다음으로 중국 불교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의 전래는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경 한 대에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정확한 경로에 관해선 학설이 분분합니다. 당시 불교가 처음 중국에 유입될 당시 한 대의 분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대 중국에 도착한 전법승들은 우선 유교와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당대의 유교는 천명론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즉 제왕은 하늘의 천자이나 덕을 갖추지 못했을 때는 천명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어 반란을 통해 다른 이를 제왕으로 추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 대의 도교는 노장사상과 같은 철학적 성격이 아닌 구원적이며 신비적인 종교적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한편 한 대 불교의 특징에 있어 한 대 불교의 주된 교리는 영혼불멸, 윤회, 그리고 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혼불멸’이란 앞서 말한 불타의 가르침인 ‘무아’와 어긋나는데 이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도교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도교의 언어로 해석된 불교를 ‘격의불교’라 칭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도교와 불교는 융합을 해 나갔지만 한말에 이르러서는 불교 내부에서 독립의식이 고취되며 도교와의 연관성을 거부했습니다.
두 번째로 중국의 선종과 교종입니다. 수당 시대에 불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사상적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인도와 서역을 여행하고 귀국한 현장법사가 인도의 불교를 중국에 전하며 경전연구가 진행됩니다. 이 중 유식설은 현장의 제자인 규기에 의해 법상종으로 정립되었고, 법상종은 유식사상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정립되었습니다. 또한 법장은 화엄경의 번역에 참가하며 화엄종을 정립했습니다. 화엄종은 연기설을 가르침의 중심으로 하는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천태종과 함께 중국 불교의 쌍벽을 이루는 종파가 되었습니다. 한편 남북조 시대에 보리달마에 의해 전해진 선은 직관적 종교체험으로서의 선을 중시합니다. 선종은 남선종과 북선종으로 갈라져 대립을 잠시 하다가 남선종이 사상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북선종이 단계적 깨달음인 점오를 중시하는데 반해 남선종은 즉각적 깨달음인 돈오를 주장합니다. 우리가 현재 선종으로 알고 있는 것은 후기의 남선종을 뜻합니다.
다음 주제는 중국 불교의 위기입니다. 불교의 황금시대였던 수·당대에는 도교 ·유교도 번성하여 삼교가 마찰 없이 발전하였으나, 당 말에는 유학자 한유가 배불을 주장하였고 무제도 도교의 견해에 따라 844년 폐불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송나라에서는 유교가 성행하며 불교를 끊임없이 배격했습니다. 한편 가장 심했던 파불은 당 무종의 ‘회창의 폐불’이었는데 이 때 4천 6백여 곳의 사찰이 폐찰되고 26만 5백명의 승려가 환속되었으며 사원에 소속된 논밭이 몰수되어 많은 종파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핍박은 신유교와 신도교에서 그치지 않고 명과 청 시대 그리고 중국 공산화 시대까지 이어지며 중국 불교는 전래의 종교 속으로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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