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김만중, 구운몽 연구 - 생애,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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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김만중, 구운몽 연구 - 생애, 사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만중, 구운몽 연구

Ⅰ. 서론
Ⅱ. 본론
1. 김만중의 생애
1)출생
2)유년기
3)등용
4)고난의 시작
5)구운몽을 짓다
6)남해에서의 죽음
2. 김만중의 사상
1)유교적 사상
2)불교적 사상
3)도교적 사상
3. 김만중의 사상과 구운몽
1)유교적 사상의 반영
2)불교적 사상의 반영
3)도교적 사상의 반영
Ⅲ. 결론
Ⅳ. 참고문헌
Ⅰ.서론
김만중과 그의 대표작 구운몽은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그 문학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내면의 모습은 영웅소설의 모습이나 이를 꿈의 세계로 처리함으로써 몽유소설의 외피를 지니고 있는 이중구조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용에 가정소설의 요소 또한 도입함으로써 당대 소설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역할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우리의 고전소설이 ‘사상성’을 포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서사적 의의를 지닌다. 구운몽이 여타 다른 고전소설들과는 다르게 매우 수준 높은 작품이라 평가 받는 것은 아마 작품 안에 ‘사상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특징은 어떻게 유래된 것일까. 이는 바로 구운몽의 작자인 서포 김만중의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포 김만중’은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거의 모든 학문에 대해 탐구정신을 가지고 철저히 분석비판하였으며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깊이 있으면서도 특색있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김만중은 유교 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깊이 있게 탐구하였으며 ‘유불선’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김만중의 ‘사상적 깊이’는 구운몽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그렇기에 구운몽은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사상적 깊이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필자는 구운몽의 이러한 특징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보고, 본고에서 이를 다루기로 하였다. 그 전에 우선 ‘김만중’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탐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생애에 대해 먼저 살펴볼 것이다. 그의 생애는 크게 여섯 단계로 나누어(출생, 유년기, 등용, 고난의 시작, 구운몽을 짓다, 죽음) 정리한 다음 김만중의 ‘유불선’ 사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앞서 정리한 서포의 사상을 바탕으로 그것들이 구운몽이라는 작품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이 되어 있는지 각각 유교, 불교, 도교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위 연구를 통해 구운몽의 ‘사상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더 나 아가 ‘사상성’이 구운몽에 부여하는 문학사적, 서사적 가치를 직접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Ⅱ.본론
1. 김만중의 생애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자가 중숙(重叔)이요, 호가 서포(西浦)다. 그의 호 서포는 그가 평안북도 선천에 귀양갔을 때 그곳의 지명을 따서 스스로 지은 것이다. 그의 집안은 광산(光山) 김씨 명문거족이었고 사계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그의 증조할아버지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우암 송시열의 스승이었음을 고려해볼 때 그는 조선조 예학파 유학의 거두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익겸(益兼, 1614-1636)은 성균관 생원으로서 병자호란 때 순절하였는데, 그 때 김만중은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상태였고 그의 형 만기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후에 만기의 딸이 숙종(肅宗)의 비 인경왕후가 되었으므로 만중은 인경왕후의 숙부다. 김병국,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1년, 1p.
1) 출생
김만중은 1637년(仁祖 15) 2월 10일 병자호란 도중 피난 가던 배 위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 함락 당시 선원이었던 김상용과 함께 배 위에서 불을 질러 스스로 자살하였기 때문에 만중은 유복자였다. 『서포연보』에서는 이 사건과 김만중의 출생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적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