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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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정리
1. 로꼬꼬와 새로운 예술의 태동
18세기의 르네상스 말기 이래 궁정예술은 계속해서 해체되어 갔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절대적인 왕권과 문화와 예술의 중심인 궁정이 와해되며 바로크 고전주의가 해체되기 시작한다. 옛 체제의 붕괴, 왕실의 권위추락은 관저를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생활공간인 도시를 보여주는데, 도시는 궁정을 대신하여 문화적 기능을 떠맡게 된다.
섭정시대에는 사회적 경계선이 명확해 지며 신분계급이 확연히 생겨난다. 그러나 이는 내면적으로 시민계급의 승리와 귀족의 몰락을 나타낸 것이다. 귀족들은 왕에게 자신들의 사법적, 행정적 기능을 빼앗기고 또한 부르즈와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부를 빼앗기게 된다. 시민계급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갈등을 겪는데 시민계급은 물질적인 우위에서, 귀족계급은 혈통과 내력에서 자신들의 우위를 강조한다. 이제 귀족은 힘을 점점 잃어가고 귀족의 특권을 시민계급에서 강력히 요구하게 된다. 부르즈와지는 점점 모든 문화의 수단을 장악해간다. 볼테르의 독자 대부분이 부르즈와지인데 이들은 자신들을 ‘교양인’이라 불렀고 18세기의 정신적 대변자 행세를 했다. 이들 프랑스 시민계급은 통일적인 면이 없었는데 정치적 민주주의 만 관심을 가졌지 경제적, 사회적 모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고전적인 예술이상을 초시대적으로 타당한 원칙으로 삼았고 이런 예술관의 변화는 실제 작품에도 적용되어 예술은 이제 더욱 인간적이고 친밀하며 더욱 차분한 것이 되었다. 위대함과 권력이 아닌 인생의 미와 우아함을 표현하며, 외경심을 불러일으켜 압도하는 대신 매력과 쾌감을 주려 한다. 예술가들은 궁정의 관습보다 감각적이고 더 섬세한 표현형식을 요구했다.
이런 진보적인 예술 감상자 층의 변화에 힘입어 바또의 화사한 풍속화가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것을 대신하여 등장한다. 바또의 등장은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귀족층과 예술에 관심을 가진 상층 부르즈와지로 이루어진 감상자 층의 형성과, 지금까지 공인되어오던 예술적 권위에 대한 의문시, 너무나 제한되어 있던 주제의 파기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목가 문학이 발달하게 되는데 베르길리우스의 중세적 목가문학에서 여러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소망의 상상적 표현의 목가 문학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허구는 현실과의 일체의 연관을 잃어버리고 철저히 사교적 놀이가 되었고 목가 생활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일탈의 경험을 하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해졌다. 점점 사회가 융통성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나며 새로운 장르인 연애소설과 심리소설이 생겨나게 된다. 심리소설에서 주인공은 비인간화이고 비 영웅화 되어있다. 현실세계의 사실들이 이제 문학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끄는 왕실 예술이었으나 로꼬꼬는 왕실 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대 부르즈와지의 예술이다. 아늑하고 우아하며, 근엄하고 장중한 색조와 암청색과 금빛의 밝은 색조, 회색과 은빛, 장밋빛의 색들은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을 나타내면 이것은 섭정시대와 구별된다. 전형적인 사교계 예술로 발전하면서 시민계급의 취미에 접근하는 로꼬꼬는 하나의 장식예술이다. 이 로꼬꼬에 이르러 르네쌍스의 최종적 예술목표에 달성하게 되며, 또한 로꼬꼬와 더불어 사물의 객관적 묘사는 근대 자연주의가 추구하던 정확성과 자연스러움을 확보한다. 로꼬꼬 이후 시작된 부르주와 예술은 이미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르네쌍스 및 예술사적으로 르네쌍스에 직접 연속되는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감각적이고 유미주의 적인 요소를 지닌 로꼬꼬의 향락문화는 돈 많고 권태로워진 자들을 위한 하나의 에로틱한 예술이다. 서구의 최후 보편적인 양식이 되는 로꼬꼬는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단일한 형식체계를 가지고 있다. 로꼬꼬 양식의 예술적 관습의 대표자는 부셰가 있다. 그는 징세청부인과 신흥부자들 및 자유주의적인 궁정인사들에게 가장 환영을 받는 에로틱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가 그 시대 양식의 대표자는 아니었다. 로꼬꼬의 후기에 활동했던 화가 중 그뢰즈와 샤르뎅은 시민계급을 대표하고 그들을 새로운 사회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국에서는 자본주의의 승리와 군주제의 존속을 함께 보장해준 왕실과 상인 계층 사이의 동맹관계가 시작된다. 프랑스보다 100년이나 앞서는 혁명으로 인해 봉건주의는 붕괴된다. 하지만 혁명은 자본과 결합된 계층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절대주의와 독점적 토지소유 및 교회에 대항한 계급투쟁이었다. 의회의 임무는 봉건질서가 무너진 폐허위에 자본주의를 건설하고, 절대주의와 교권체제에 동조하는 기생충적인 계층을 늘려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부류의 지배권을 확립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역시 시민계급은 뒤쪽에 있었으며 귀족계급이 의회를 주도하게 된다. 영국은 이제 의회귀족, 부유층, 빈민의 세 가지 신분으로 나뉘어 진다. 그러나 귀족계급은 부를 축적함으로써 재력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이제 재산소유를 기초에 둔 근대적인 사회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문화적 평준화는 부유한 시민계급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 귀족계급의 특권인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자 독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새로운 책이나 잡지가 발간되면서 더 이상 작가는 봉사료를 받는 사람이 아닌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지 문학의 작품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이후 패트런 제도가 다시 나타나지만 1780년이 되면 이 패트런 제도도 완전 끝나게 된다. 작가들은 이제 출판이라는 개념을 가지게 된다. 문학작품은 자유시장에서의 판매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하나의 상품이 된다. 비로소 작가는 문학작품으로서 합당한 존경을 받게 된 것이다.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은 이제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버린다. 고도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낙관주의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는 자유라는 이데올로기의 일부이다. 자유라는 개념에서 개인주의가 생겨났다. 인간을 그의 개인적인 성향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신과 관계없는 무차별한 기능의 담당자로, 표준화된 상품의 구매자로, 나날이 더욱 획일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개인주의는 공격받게 된다.
18세기 전반기의 시민계급 문학은 실천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중엽이 지나고 갑자기 도피주의가 시민계급 문학의 주요 내용을 이루게 된다. 도피는 합리성과 의식성에서 무책임한 감정성으로, 문화와 문명에서 자연으로의 도피를 추구한다. 즉 전원적 자연을 인간이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조화로운 배경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