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부터 19세기 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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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5세기부터 19세기 분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5세기부터 19세기 분철, 연철, 중철 변화양상
* 분철, 연철의 문제는 자모문자면서 음절단위로 합자하여 쓰는 방식을 채택하여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더군다나 ‘가슴이, 가슴을, 가슴으로’ 와 같은 교착어로서의 현상이 분철, 연철 문제를 더욱 가중시켰다.
* 훈민정음 창제 직후의 합의 : 받침으로 끝나는 명사나 용언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류와 결합할 때에는 마지막 받침 하나를 내려 적는다.
1) 15세기 특징
* 분철 표기는 명사와 조사의 결합에서만 나타나고, 아직 동사의 활용에서는 전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 아직 꽤 산발적이고 불규칙적이다. 명사말음이 ‘ㄴ, ㅁ, ㄹ’일 때에만 분철표기가 행해지는 문헌이 있는가 하면 ‘ㄱ,ㅂ’ 및 ‘ㄷ, ㄹㄱ, ㄹㅂ’ 일 때에도 그러는 문헌이 있으며 혼란스럽고 우발적이었다.
* 명사의 경우만을 보아도 아직 연철의 세력이 훨씬 크다. 15세기는 아직 연철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이미 분철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르면 법화경언해부터 늦어도 남명집언해를 들 수 있다.
가. 분철
월인천강지곡은 예외적인 분철주의였다. 일사불란하게 명사나 동사 어간의 말음이 ‘ㄴ,ㄹ,ㅁ’등의 유성자음일 때에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나 어미와 분리하여 표기했다. 그 외에 법화경언해, 남명집언해 등이 명사 말음이 ‘ㅁ, ㄴ, ㄹ, ㄱ’일 때 분철을 했지만 10%-20% 정도였다. 남명집언해에서는 형식명사나, 겹받침 명사, ‘ㄷ’으로 끝난 명사도 분철 되는 예가 보였다. 예) ‘네 몸이니’ ‘불근 돌애 섯거’ ‘밧가락으로’ ‘눈으로 사방 도라보샤’ ‘흐르는 믌결이’ ‘여러 터럭에 다 들며’ ‘여듧이라’
나. 연철
용비어천가, 성보상절, 훈민정음해례, 능엄경언해, 월인석보, 원각경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