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金宗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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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종길(金宗吉)론
1. 작가의 생애
김종길은 1926년 5월 경북 안동군 길암면(현 임동면) 지례리에서, 아버지 김문대와 어머니 이영희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28년 어머니를 여의고, 5세 때부터 증조부에게 한문을 배운다. 1934년 4월에 진보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김종길은 글짓기, 특히 운문을 짓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방학 때는 외가에 가서 시인이었던 외삼촌 이병갑의 서재에서 우리말로 된『문장』,『시학』등의 문학잡지와『청마시초(靑馬詩抄)』,『화사집(花蛇集)』,『정지용시집』등의 시집을 접하고 정독하여 우리말의 감각을 익히고 우리시의 우수성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40년 대구사범대학교 심상과에 입학한다. 대구사범을 다니면서도 문학에의 정진은 계속되어 동급생이었던 이근우, 이상한 등과 동인지『은하대(銀河帶)』를 만들었다. 1945년 졸업 후 그해 9월까지 안동서부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1월에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다. 혜화전문에 재학중이었던 46년 『주간소학생』지의 현상모집에 응모한 동시「바다로 간 나비」가 입선하고, 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문(門)」이 당선함으로써 일찍이 등단하여 당시 경향신문 주필이면서 시부문의 선자(選者)였던 정지용 선생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후에 김종길은 영문학에 흥미를 느껴 47년 영시 시론에 밝다는 선생을 찾아 고려대로 편입한다. 거기서 만난 분이 이인수 교수였다. 48년 2월에 지금의 부인 강신향과 결혼하고, 11월에는 훗날 영국 유학길에 인생의 중요한 만남을 가지게 될 엘리어트의『황무지』를 이인수 교수의 지시로 번역한다. 50년 영문과를 졸업하면서 대학원에 입학한다. 59년 8월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과 조교수로 취임하고 이듬해 3월 부교수로 승진한다. 60년 1년간 영국유학 길에 올라, 지도교수였던 W.엠프슨 교수 외에도 S.스펜더와 T.S.엘리엇 등 영국의 저명한 시인, 비평가들과 만났다. 영국에서 돌아온 그는 65년에『시론』을 간행한다. 번역본『폭풍의 언덕』을 발간하고 드디어 69년에 첫 시집『성탄제』를 발간하였다. 74년 제2시론집『진실과 언어』를 발간하고, 77년에는 시집『하회에서』를 발간, 다음 해목월문학상을 수상한다. 84년 문교부 파견 교수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 학년 동안 영문학을 연구한다. 86년 회갑년을 맞아 수상집 『산문』을, 시집『황사현상』과 시론집『시에 대하여』를, 즉 5개월 사이에 3권을 발간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91년 그는 시선집『천지현황』을 미래사에서 발간한다. 97년에는《달맞이꽃》을 발간, 1998년엔 시론집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간행한다. 2004년에는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 2005년에 다섯 번째 시론집 『시와 삶 사이에서』를 간행했다. 2008년 3월엔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를 간행하였고, 2009년 만해대상을 수상하여 시인이자 영문학자로 동양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동서양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깊은 문학사적 통찰력으로 현대시의 나아갈 길을 밝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 시세계의 변모
1) 습작기의 시 : 화해와 교감의 세계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이십대 초반의 김종길이 발표한 시는 모두 8편이다. 이 무렵 그의 시는 모색의 양상을 드러내는데, 다양한 주제와 형태 실험 과정에서 추출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은 정확한 조사, 감각의 균형, 윤리적인 태도, 섬세한 색채감각 등이다. 이 때에 시인의 주된 관심은 바깥 세계의 사물들을 가능한 한 흔들림 없는 주체의 눈으로 관찰하고 그들과 나누는 교감을 세밀히 추적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바깥 세계의 사물은 시의 주체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채 주체의 사려 깊은 눈길로 양자 간의 호감은 탐구되었으며, 주체의 속마음에 스치는 긍정적 반향은 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이와 같은 세계가 대체로 화해롭고 밝은 정조를 견지하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흰 벽(壁)에는―
어련이 해들 적마다 나뭇가지가 그림자 되어 떠오를 뿐이었다. 그러한 정일(靜溢)이 천년이나 머물렀다한다.
단청(丹靑)은 년년(年年)이 빛을 잃어 두리기둥에는 틈이 생기고, 별과 바람이 쓰라리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험살궂어 가는 것이 서럽지 않았다.
기왓장마다 푸른 이끼가 앉고 세월(歲月)은 소리없이 쌓였으나 문(門)은 상기 닫혀진 채 멀리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밤이 있었다.
주춧돌 놓인 자리에 가을 풀은 우거졌어도 봄이면 돋아나는 푸른 싹이 살고, 그리고 한그루 진분홍빛 꽃이 피는 나무가 자라났다.
유달리도 푸른 높은 하늘을 눈물과 함께 아득히 흘러간 별들이 총총이 돌아오고 사납던 비바람이 걷힌 낡은 처마끝에 찬란(燦爛)히 빛이 쏟아지는 새벽, 오래 닫혀진 문은 산천을 울리며 열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