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유배길 문화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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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다산의 유배길 문화기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출발한 날 아침, 오리엔테이션때와는 다른 어색한 분위기보다 1박2일동안 잘 지내보자는 행동들을 해서 신기하였다. 그 모습들이 문화기행에 좋은 시작을 알린 것같다. 전체사진을 찍고 나서 버스에 올라 각 조장들은 조원들에게 물과 음식등을 배분하였다. 역시 먹을것이 분위기를 좋게 한다고 말이 나올정도로 맨뒤에 앉아있던 나는 시끌벅적한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나주에 완사천을 들리기전 ‘율정점’이란 곳을 들리기로 하였다. ‘율정점’은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이별의 밤을 보낸곳이다.
그래도 유지되어있을줄 알았던 우리는 사방팔방을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는데 알고보니 그 터에 식육점으로 바뀌어 못찾았던 것이였다. 아쉽긴 했지만 다산 정약용쉼터라는 곳에서 앉아서 풍경을 두리번 거리며 잠시 쉬니 그러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일정표의 ‘완사천’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부인의 첫만남 장소로 알려진 곳을 가게 되었다. 이곳의 일화는 어렸을때부터 들었었지만 교수님의 재미있고도 야한(?)이야기가 추가되어 버들잎으로 천천히 마시도록했던‘배려’와 왕건의 부인이 되고자했던 행동에서 보여지는‘총명’을 배우게 되었다.
점심은 나주에 유명음식인 나주곰탕을 먹고 그 거리에 있던 ‘금성관’이라는 유적지를 산책과 더불어 견학겸 들어가게 되었다.‘금성관’은 나주목 관아의 객사란 뜻오로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볼 수도 있고, 중앙관리가 출장길에 사용하였던 숙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을 돌며 큰 은행나무의 악취로인해 동물들이 나무를 건들지 않아서 어떤나무보다도 더 오래 장수하고 또 보존될수있었던 까닭과 암수 구별하는 방법을 교수님께서 말해주셨다.
간단한 산책과 전체사진을 찍고 차에올라 가는길에 월춘산이 보이는 ‘월남사지’를 들렸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모전석탑이며 원래는 백제양식, 신라양식기법의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석탑에 층수별 구분을 알게 되었고 동백나무 씨앗을 주우며 다시 차에 올랐다. ‘월남사지‘가 나무로 많이 가려져있었기 때문에 표지판이 없었다면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백운동 차밭에 들려 풍경을 보는데 보성 녹차밭과 비슷한 풍경이였다. 풍력 발전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발전기 같은(?)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진들을 찍으며 어린아이같은 웃음짓는 일원들에 모습에 나도 덩달아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여행의 묘미는 사진 아닌가? 휴식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무위사’를 가게 되었다.
617년 원효가 창건하여 관음사로 지어졌으나 갈옥사,목옥사라 중건하면서 개칭이 되었다가 1550년 무위사로 마지막 개칭이 되었다. 무위사의 극락전에 들어가 보면 앞에는 불상이 있고 뒤로돌아가보면 백의관음도라는 그림이 있다. 아름다운 자태에 신기할 뿐이었다. 그림 아래에는 흰색 선으로 십자가모양이 그어져있는데 들리는 말로는 기독교신자가 그림에 해를 입혔다고 한다. 어떤 종교든 다 안고 이해하고 사랑하는게 진정한 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위사 옆에 있는 박물관에서 벽에 그려졌던 그림들을 떼어내어 논 것과 유물들을 전시해 논 것을 보고 시대 불교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님께 ‘화룡점정’에 대한 일화를 듣게 되었다. 마지막 그 한순간에 참지 못 함이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다시 차에 앉아 오늘의 숙소 미황사를 가게 되었다.
해남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 숙소에 짐을 놔두고 ‘대웅보전’에 들어가 스님에게 미황사의 일화를 듣고, 절법을 배웠다. 천장 곳곳에 있는 일천불 들이 내가 하는 행동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