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 토우 토우발생 토기 토우 고분시대 장식토우 토우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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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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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토우(土偶)
1. 토우란 무엇인가?
1)장식 토기와 토우.
삼국시대의 토기는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각종 기하학적 무늬나 인물이나 동물의 구체적 모습을 새기거나 만들어 붙여서 표면을 장식한 것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삼국시대의 토기 중에서도 특히 신라와 가야의 토기에서 많이 보이며, 이외에 동물이나 인물의 형태를 작게 만들어 붙이거나 손잡이 등을 동물의 모습으로 만든 토기도 있다. 이와 같이 토기의 표면에 작은 모습의 인물이나 동물을 만들어 붙인 것들을 토우장식토기라고 부르며, 손잡이 등을 동물 모습으로 만든 것도 그 아류에 속하므로 이들을 모두 합해 장식토기로 분류할 수도 있다.
토우는 문자 그대로 흙으로 만든 인형(人形)을 뜻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사람의 모습뿐 아니라 여러가지의 동물이나 생활용기, 집 등의 형태를 표현한 것들까지도 포함한다. 토우는 장식토우와 독립된 명기로서의 토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장식 토기와 관련하여서는 소위 토기의 전체모습이 인물모양인 토용이나 동물이나 집, 수레, 배등을 표현한 상형토기가 제외되고 일반적인 토기인 굽다리 접시나 목단지, 그릇받침, 잔의 손잡이 등에 붙는 작은 동물과 인물 등을 뜻하며 이를 장식토우라 부른다.
2) 토우의 발생
넓은 의미의 토우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예술품을 만들기 시작한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만들어졌으며, 동서양에서 모두 주술적인 행위의 대상물로 기원의 대상이거나 무덤의 껴묻거리로 만들어졌다. 기원의 대상인 우상으로 만들어진 토우는 대부분 유방이나 엉덩이가 크게 과장된 임신한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 대부분이며, 이것은 출산력이 있는 여성의 모습이 풍요나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女神), 또는 대지모신(大地母神)으로 신격화 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인 앙소문화기(仰韶文化期)부터 토우가 보이고 있으며, 은대(殷代)에 와서는 토용(土俑)이라 불리우고 부장용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갖기에 이른다. 이러한 중국의 토우는 오히려 죽은 이에의 봉사자로서 무덤 속에서의 생활에 봉사한다고 해석하여 무인(武人), 기예(技藝), 동물(動物) 이외의 생활 용구 등을 많이 만들어 넣었다. 그 중에서도 춘추전국시대의 진시황릉은 사후세계를 지키기 위해 실물크기의 인물용(人物俑)을 대량으로 껴묻은 것이 발굴을 통하여 밝혀져 그 의미를 더욱 생상하게 나타내 주었다.
일본에서는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토우가 나타나며, 처음에는 극히 간단한 모양이었으나 차츰 팔다리가 뚜렷해지고 때로는 신체의 일부를 과장하여 표현하거나 매우 형식적으로 변한것도 보인다. 이들은 다분히 주술적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고의로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깨서 버린 상태가 많다. 인간의 몸에 닥치는 병이나 재앙을 토우에 전가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분시대(古墳時代)에는 하니와(埴輪)라 칭하는 독특한 토우들이 많이 만들어져 무덤의 둘레에 돌려지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토우가 만들어져W지만 수량은 많지 않으며,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사람얼굴모양과 울산 신암리유적의 말, 욕지도 조개더미유적의 돼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토우를 말할 때는 신라와 가야의 유물을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그 양도 풍부하고 모양역시 다채롭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것은 그 예가 거의 없고, 조선 왕조 때에 이르면 도자기로 만들어져 무덤에 넣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흔히 명기(明器)라 부르며 역시 인물동물에 관한 생활용기 등이 많이 만들어져 부장되었다.
3) 장식토우
신라토우의 대부분은 토기 항아리나 고배 등의 용기 어깨나 목 또는 뚜껑에 장식으로 붙였던 토우들이다. 때문에 장식토우는 신라토기에서 가장 많이 보이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라에 복속되거나 영향아래에 있던 낙동강 동안에서 약간의 예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토기에 장식적인 토우를 붙이는 전통은 신라에서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뿔잔이나 상형토기가 같은 분포권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한편 신라토기에서도 장식토우가 붙은 토기는 대체로 6세기경의 토기에서 많이 보이는데 이러한 현상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지증왕이 즉위 3년(502년)에 딸려묻기〔殉葬〕를 금지한 기록이나 이후에 보다 활발해진 영토의 확장과 같은 시대적 배경에 연유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