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이기심 그리고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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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배려와 이기심 그리고 중용
1. 중용과 배려윤리 선정 이유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초등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배려인 것 같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남을 위한 행동 등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배려를 말한다. 배려가 중요한 가치이며 공동체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덕목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우리가 배려를 중시하는 경향 속에서 등한시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덕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학급 친구가 있고, 그 친구에게 자신의 준비물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학생이 있다면 우리는 후자의 학생의 이기심을 더 야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배려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의래 배려를 기대하며 자신의 책임을 조금은 미뤄두고 무임승차를 기대하는 경향도 있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은 배려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해주는 쪽도 받는 쪽도 그 어떤 의무도 권리도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합리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을 내리길 바란다. 또한 상호성에 기반을 둔 배려를 배우길 원한다. 그래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길리건의 배려윤리론을 기반으로 아이들에게 중요한 도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다.
2. 도덕교육 강의를 통해 내가 이해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흔히 ‘덕’이라 하면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는 남을 위한 마음쯤으로 ‘배려’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이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말한다. 그 상황을 정확하고도 냉정하게 판단하여 내린 결정을 의지력 있고 책임감 있게 밀고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지적 요소와 정의적 요소 행동적 요소를 결합했을 때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덕성인 덕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으로서의 행복을 완전한 덕에 따르는 마음의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덕을 지적인 덕과 도덕적인 덕으로 구분한다.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기며,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발생하거나 성장한다.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도덕적인 덕에 대해 논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덕은 결국 중용을 그 핵심으로 한다. 그러나 모든 행위와 모든 정념에 중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악의, 질투, 절도, 살인 같은 경우에는 그 중용이란 도무지 없으며, 그 자체가 나쁜 것이다. 요컨대 언제나 그릇된 것이다. 이에 비해서 절제와 용기는 그 극단적인 것이 중간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과도와 부족이 도무지 없다. 요컨대 절제와 용기는 그 자체가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과 중용에 대한 위와 같은 일반적인 언급을 개별적인 사실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위란 어디까지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우에 관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몇몇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명예와 불명예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긍지요, 그 과도는 이른바 허영이요, 그 부족은 비굴이다. 노여움에 관해 말하면, 그 중용은 온화요, 그 과도는 성급함이며, 그 부족은 성질 없음이다. 진리의 중용은 진실이요, 그 과도는 허풍이며, 그 부족은 거짓 겸손이다. 돈을 주고받는 일에서 중용은 너그러움이며, 그 부족은 인색함이고 그 과도는 방탕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중용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가? 뜻하지 않은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에 의해 중용에 맞게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성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몸에 젖은 행동의 습관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시적, 우연적으로 중용에 맞게 행동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항구적일 수 없다. 시종일관 중용에 맞는 행동, 즉 유덕한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는 덕의 습관, 중용의 습관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인격이란 오랜 세월에 걸친 일관된 도덕적 훈련과 그로 인한 습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인격자란 모든 행동에서 자신이 형성한 중용의 습관에 맞추어 신뢰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의 하나의 행위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그가 전 생활의 모든 행동에서 중용을 지키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유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의 실천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나 유가의 중용이나 불가의 중도나 다 비슷한 개념인 데, 사람들이 곡해를 많이 한다. 그만큼 이 말은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중용은 중간만도 아니고 중심도 아니고 균형도 아니다. 정확히 말해서 가장 알맞은 경우이다. 이를테면 무욕과 유욕의 중용은 적당히 중간에서 조정되는 것만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중용은 무욕적일 수도 있고 유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극도의 쾌락도 적당한 쾌락도 쾌락의 금지도 다 중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더 말하자면, 비겁과 만용, 무모함의 중용이 용기라고 하는 데, 중용은 이렇게 설명될 수 없다. 중용은 대전제가 있는 데, 바로 이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완벽에 가까운 고도의 판단능력인 이성의 결정에 따라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용이니까. 용기는 때로는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또 희망을 중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 절망과 환상(과대망상)의 중간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과대망상 같은 것도 희망이 될 수 있다.
3. 도덕교육 강의를 통해 내가 이해한 길리건의 배려윤리론
콜버그의 남성위주의 도덕접근에 반기를 들어 정의보다는 배려를 기준으로 도덕성을 이해하려 노력한 학자이다. 즉, 도덕성에 성차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여성은 배려추론을 하여 그 관계나 책임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에는 여러 가지 단계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 제1수준(자기 생존과 이기심)
자기중심성과 자기 이익 지향성이 주된 특징이 된다. 이 수준을 위해 자기 자신을 돌보는데 초점이 두어진다. 임신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임신중절을 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
- 제2수준(책임과 자기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