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논문]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론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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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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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
Ⅰ.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론적 고찰
인간은 그의 여러 가지 활동과 행위에서 항상 어떤 목적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목적들 자체가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추구되는 그러한 목적들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서 목적인 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수단을 만들어 내거나 선택하도록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최종적 목적이라는 하나의 인위적인 개념을 발전시킨다. 이것은 결코 어떤 다른 무엇 때문에가 아니라 항상 오직 자기 자신 때문에만 추구되는 목적이며, 또 이것을 위해 우리가 추구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자기 안에 포괄하는 목적이며,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이 목적을 실현시킴에 도달했다면 우리의 삶에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그러한 목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 말한다.
그는 이러한 행복을 활동과 업적의 개념을 통하여 자세히 규정한다. 한 예술가의 경우와 같이, 그가 만들어내는 것이거나, 아니면, 예를 들어 한 피아니스트의 경우와 같이, 그가 수행하는 활동이다. 눈과 같은 신체적 기관들도 자신의 활동과 업적을 가지고 있다. 능력을 가진 어떤 것은 좋은 상태에 있거나 아니면 나쁜 상태에 있다. 인간의 활동 목표 또는 인간이 추구하는 선은 인간의 이성적 영혼이 자신의 최고의 능력을 최선의 상태에서 발휘하는 그러한 활동에서 이루어진다. 즉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쟁취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활동과 행위(실천)에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 능력이 비로소 인간에게 행복에로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 짐승이나 어린아이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힘들여 성취해 내야만 하는 작업이다. 그가 실행에 옮기는 그 능력의 수준이 높을수록, 그가 체험하는 행복의 강도는 더 크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자아실현의 윤리학이라고도 불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누구나 그 고유의 기능과 능력, 잠재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 이를 최고로 발현시킬 때 자아실현을 이루게 되며 이렇게 자아실현을 성취할 때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실현과 자기완성을 도모하고 행복해지려면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가장 잘 봉사하고 자신의 기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해주는 덕들을 발달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은 이성적 기능을 본성으로 한다. 식물과 동물의 삶과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성적 요소는 인간의 고유한 본성으로 이 기능의 탁월함은 선이요, 덕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 부분은 크게 두 가지 덕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지적인 덕이요, 하나는 도덕적 덕이다.
지적인 덕에는 철학적 지혜, 학적인식, 직관적 이성, 실천적 지혜 및 기술이 있으며, 이는 교육을 통해 획득되어진다. 인식적 부분에 해당되는 것으로서는 진리 추론에 의해 파악하는 학적 인식의 덕과 학문을 성립시키는 근본 원리를 아는 직관적 이성의 덕 그리고 직관적 이성과 학적 인식이 합쳐져 가장 고귀한 것들을 인식하는 철학적 지혜의 덕이 있다. 실천적 지혜는 도덕교육과 관련이 깊은데, 실천적 지혜는 인간적인 선에 관해서 참된 이치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도덕적 덕은 이성적 원리에 따라 올바른 행동과 감정을 갖는 성품의 상태를 의미한다. 도덕적 덕은 습관과 훈련을 통해 획득되어진다. 올바른 행동이란 과도함과 부족함이 없는 상태로서 중용의 행동을 의미한다.
중용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에 있는 것으로 적절한 때, 적절한 대상에 대하여, 적절한 정도(범위)를 갖는다. 중용으로서의 덕은 상대적(절대적 산술적 중간점 모두에게 동일한 것 아님)이며 상황 고려가 중요하다. 또한 객관주의적 입장으로 유사한 상황에 있는 경우, 이성에 의해서 그들에게 덕이 있는 행위로 부과되는 유사한 행위를 하게 된다. 스스로 쾌락(만족감)을 느껴야 하고 행동의 습관화로 항상 그렇게 선택하여야 한다. 하지만 모든 행위나 감정에 중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중용의 결정은 자신의 본성을 통하여 중용을 드러내는 각 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 비추어 무엇이 중용인가를 판단함에 있어 항상 이성의 판단에 따라 무엇을 행하고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올바른 동기에서 행위하도록 결정(선택)하는 것이다.
도덕적 덕은 후천적이며, 덕이 있는 인격이나 성품을 지니게 되는 것은 덕스러운 행동의 반복을 통하여 가능하다. 즉, 도덕적인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예컨대, 우리는 옳은 행위를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감한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된다. 이러한 좋은 습관이 몸에 지니게 하기 위해 도덕교육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덕은 행동의 성향일 뿐만 아니라 감정의 성향이기도 하다. 즉, 덕은 한편에서 보면 어떠어떠하게 행동하려는 성향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어떠어떠하게 느끼는 성향이기도 하다. 덕스럽다고 말해지는 것은 단순히 어떻게 자신의 감정에 비추어서 행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의 측면에 있는 것으로서 용기 있는 사람은 옳은 것들에 의해, 옳은 방식으로 옳은 상황에서 놀라게 되는 사람이며, 놀라게 되지 않는 것이 적절할 때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이다. 중용적인 사람은 옳은 일에 의해, 옳은 방식 등에 의해 즐겁게 되는 사람이다. 여기서 덕 있는 사람은 단지 옳은 행동을 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즐거워하면서 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덕 있는 사람은 단지 자제력이 있는 사람과 구별되는데, 자제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충동에 맞서서 고통스럽게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적절한 감정의 상태를 갖는 것은 덕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올바른 감정을 갖기 위하여 적절한 감정을 형성시키는 교육을 강조하였다. 의도적으로 우리의 정서적인 반응을 중용에 적합하게 하는 것 즉 그 반응의 정도를 적당하게 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