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조중환의 병자삼인과 병렬적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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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조중환의 병자삼인과 병렬적 구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조중환의 과 병렬적 구성
1. 서론
은 1912년 11월 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조일재의 창작 희곡이었다. 이 연재되던 1910년대는 그 출현만으로도 한국 희곡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작품이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순수창작품의 여부를 두고 큰 논란이 되었던 문제작이기도 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 연재되던 1910년대의 연극사적 특수성을 살펴봄으로써 병자삼인의 한계와 의의를 찾는 한편, 이 번안이라면 그 원본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작품인 일본 신파극 와의 작품 구조와 작중 인물 성격 등의 비교분석을 통해 이 번안이 아닐 가능성을 추론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은 한 가지의 커다란 이야기의 흐름을 중심으로 세 그룹의 인물들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사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결말까지 풀어나가는 독특한 병렬적 구성 방식을 갖는데, 이처럼 명확한 연결고리가 있는 병렬구조와 함께 또 다른 병렬구조의 종류를 살펴보고 그에 맞는 사례를 예시함으로써 그 극적 효과를 논의해보고자 한다.
2. 시대적 고찰
1894년의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나 의식은 크게 변화했다. 문학에서도 고소설은 신소설로, 시조는 현대시로의 변화를 모색하며 새로운 시대의 삶과 의식을 나타내었다. 하지만 다른 문학 장르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반면 희곡은 이전의 모습에서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탈춤을 비롯한 우리의 전통극이 ‘현장성’을 중시했기 때문에 연극의 대본이 되는 희곡을 갖추지 못한 현실이 바로 근대적인 희곡갈래의 성립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서면 희곡은 앞시대의 서사 양식인 판소리에서 새로운 희곡 양식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명의 창자가 나와 공연하는 판소리와 달리 여러명의 창자가 창악각본에 따라 연기하며 소리를 하는 창극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창극은 새로운 무대 예술을 바라는 평민층의 욕구, 상업 자본의 축적, 외국 연극의 영향 등에 힘입어 새로운 연극양식으로 점차 바뀌어 갔고 의 공연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창극단체로 하여금 일본연극을 모방하여 공연하게 하려한 시도가 무산되자 결국 창극단체 자체를 없애려 한 일본의 정책과 자기시대의 삶을 무대 위에 올려놓지 못한 창극 자체의 문제 때문에 이후 창극 창부들은 지방순연으로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1) 와
앞서 언급했듯이 일제는 창극 창부들을 이용하여 일본의 연극을 우리나라에 옮겨 오려 했으나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자 창극 단체를 해산시키고 신파극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모든 언론기관이 폐쇄되고 총독부 기관지로 지정된 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이는 의 성격이 어땠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다. 조일재는 총독부 신파극 지원에 부합하는 매일신보의 정책 추진에 가장 적당한 인물이었다. 의 기자인데다 이미 신파극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12년 11월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연재된 도 이러한 의 기대 아래 조일재가 발표한 창작 희곡이었다. 하지만 조일재는 신문사와 총독부의 신파극 지원 정책에 무조건 영합하기만 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자신의 창작욕과 신파극 지원 정책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 자 한 작가의 고민이 으로 나타나게 된다. 완벽한 신파극은 아니지만 신파극 형식에 전통극의 소극적인 형식을 접목시켜 관객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사회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일제의 압박으로 힘들었던 1910년대에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채택했고 이와 동시에 최초의 기록희곡이라는 점에서 은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2) 은 순수 창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