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서정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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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20년대 서정 양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20년대 서정 양식
Ⅰ. 서론
Ⅱ. 1920년대 초기『폐허』와 『백조』
Ⅲ. 1920년대 중기 KAPF
Ⅳ. 김소월과 한용운
Ⅴ. 결론
※ 참고문헌
Ⅰ. 서론
1920년대는 1919년 ‘3ㆍ1운동’이라는 거족적 저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비록 실패와 좌절로 끝났지만, 3ㆍ1운동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민중의 의식을 일깨웠으며 근대 사회로 접어드는 발판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문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언론출판에 대한 규제 완화로 신문과 잡지의 출간이 허용되면서 많은 문인들의 등장과 함께 문단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특히, 동인지의 창간과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1919년에 창간된 『창조』를 위시하여『개벽』(1920),『폐허』(1920),『장미촌』(1921),『백조』(1922),『금성』(1923),『영대』(1924),『조선 문단』(1924),『해외 문학』(1927),『문예 공론』(1929)에 이르기까지 그 작가와 작품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각각의 경향과 문학사적 의의 또한 다양하다. 이들 동인지를 통해 활동한 많은 문인들과 문학 작품들은 1920년대 자유시의 성숙에 크게 기여하며 우리 근대 문학의 출발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20년대 초기 서정 양식은 1910년대의 계몽성에서 탈피하여 ‘문학’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동인지를 중심으로, 절망과 죽음, 허무와 폐허를 노래하는 상징주의와 낭만주의로 흐르면서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 후 20년대 중반에 결성된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서는 ‘문학’ 자체보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문학에 주력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카프에 맞서 최남선, 주요한, 이은상, 이병기, 정인보 등의 ‘국민 문학파’는 민중의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시조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데 앞장섰다.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민음사, 2002, 258쪽.
한편, 동인지들의 경향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시를 창작하여 민족 주체성의 상실과 회복을 노래한 시인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두 사람이 萬海 韓龍雲(1891~1944)과 素月 金廷湜(1902~1934)이다. 조동일 외, 『한국문학강의』, 길벗, 2004.
3ㆍ1운동의 실패로 인한 1920년대 초기 퇴폐적인 경향의 허무와 좌절은 김소월과 한용운에 의해 새로운 차원으로의 극복과 승화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본고에서는 『폐허』(1920),『장미촌』(1921)에서 보여준 허무적이고 퇴폐적인 낭만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은『백조』(1922)와 사회주의의 급속한 확산 속에 결성된 카프, 그리고 독자적인 시 세계를 펼친 김소월과 한용운을 중심으로 1920년대의 서정 양식을 통괄적으로 살펴 볼 것이다.
Ⅱ. 1920년대 초기『폐허』와 『백조』
1919년 3ㆍ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창작 주체의 세대교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창작주체는 대부분 동경유학생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로 부르주아 계몽주의 토대 위에서 창작을 했던 이전의 창작주체와는 전혀 다른 정신적 기반을 갖고 있었다. 해외유학파를 중심으로 해외문학과 해외문학사조를 수입ㆍ소개하였는데, 당시 동인지의 작품 경향을 살펴보면 『창조』는 자연주의, 『폐허』는 퇴폐주의, 『백조』는 낭만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김해니, 「한국근대시문학사연구」. 국학자료원. 2002. 81쪽~84쪽.
이들은 1910년대 계몽주의 문학의 교훈성을 부정하고 문학의 순수성과 영원성을 옹호하며 ‘개성과 자아의 확립’을 내세워 현실에 대한 전망을 갖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옹호하려고 했던 문학의 순수성과 영원성이란 현실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거나 현실로부터 도피함으로써 관념적인 유미세계에 탐닉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3ㆍ1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당시 지식인층들은 현실 문제를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에 3.1운동 직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냉엄한 현실과 그 파장에 놀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에 있어서도 이런 역사적 현실을 감당할 내적 양식이나 전통을 준비하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낭만적 감상주의가 유행하게 되었다. 1919년 3ㆍ1운동의 실패에서 온 데카당스 decadence. 라틴어 명사 ‘decadentia에서 파생된 것으로 ’쇠퇴‘나 ’타락‘을 뜻하며 문예사조에서 퇴폐주의를 뜻함. 송재영,「한국 근대시와 데카당티슴」, 『문학과 지성』, 1982, 봄, 124쪽
와 서구에서 몰려온 낭만적 감상주의의 혼합은 동인지『폐허』에서 시작되어 『장미촌』을 거쳐 『백조』에 이르러 심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