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도덕교육 - 칸트의 도덕철학과 의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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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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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칸트와 도덕교육
■ 목차 ■
Ⅰ. 임마누엘 칸트
ⅰ) 칸트의 생애
ⅱ) 칸트의 선택한 이유
Ⅱ. 칸트의 도덕철학과 의무론
ⅰ) 이성
ⅱ) 선의지
ⅲ) 의무
ⅳ) 정언명령
Ⅲ. 칸트의 도덕 교육
Ⅳ. 칸트에 대한 비판
Ⅴ. 경험 사례 분석
Ⅵ. 도덕수업의 적용
ⅰ) 적용 사례 및 분석
ⅱ) 지도안
Ⅶ. 느낀 점
Ⅷ. 참고문헌
- 칸트의 의무론
Ⅰ. 임마누엘 칸트
ⅰ) 칸트의 생애
칸트는 아버지가 마구장인이셨고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엠마누엘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임마누엘로 히브리어를 배우면서 스스로 바꾸게 되었다.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인 쾨니히스베르코에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쾨니히스베르코 대학에 6년동안 공부하면서 활력의 올바른 측정술에 관한 사상을 졸업논문으로 제출하였으며 힘을 측정할 수 있는 원리에 대한 내용이다. 칸트는 생계유지를 위해 가정교사 일을 하다가 다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돌아와 논문을 발표했는데 보편적 자연사와 천체이론이다.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원리에 관한 새로운 해명 이라는 논문을 31살에 썼고 철학에만 관심이 있었다. 칸트는 32살때 사강사로 일했는데 시간강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수강생들에게 강의료를 받는 일을 했으며 도서관 사서로 일하기도 했다.
46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정식교수가 되었으며 형이상학 논리학 강좌를 담당하게 되었다. 57세에 순수이성비판을 내놓지만 내용에 대한 혹평과 오해를 받으면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후 실천이상비판 판단력비판 등을 내놓으면서 3대 비판 철학서가 완성이 되었다. 칸트의 종교적인 철학에 대한 논문을 프로이센 당국은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 종교를 내놓았다.
결국 빌헬름 2세 칙령으로 종교철학을 논문을 쓰지 않기로 약속을 해야만 했다. 합리론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본래 갖고 있던 지식을 이성이 일깨우는 것이 경험의 역할로 본다. 반대로 경험론은 경험을 통해 지식을 가지는 것이라고 보는데 칸트는 본래 인식의 능력은 갖고 있지만 그 내용은 경험으로 얻게 된다고 보았으며 경험을 내용으로 삼고 타고난 인식능력으로 보편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했다.
허약체질이었던 칸트는 건강을 극복하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습관 건강관리를 했고 산책을 즐겨했다. 정해진 시간에 늘 산책을 즐겼으며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루소의 에밀을 보다가 산책시간을 지나친 적이 있다는 얘기는 매우 유명하다. 1804년 칸트의 생애를 마감하였으며 수천 명의 행렬이 장례식을 뒤따랐다고 한다. 쾨니히스베르크 전체가 휴무를 할 정도였으며 그들에게 지식으로 인간해방을 가르친 스승으로 여기고 있었다.
ⅱ) 칸트의 선택한 이유
임마누엘 칸트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다. 칸트라는 철학자를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윤리 시간이었다. 칸트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배우기 전 윤리 선생님께서 이웃들이 칸트의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로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것과 자신의 말을 끝까지 지키며 묘비명에 적힌 칸트의 글에 나는 굉장히 인상 깊었다. 칸트의 부모님은 매우 가난했다. 어머니는 그가 겨우 13살이 되던 해에, 그리고 아버지는 그가 22살이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야기했듯, 칸트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만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자신처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 칸트의 묘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