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와 지구촌 정의관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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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야만의 시대와 지구촌 정의관 정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야만의 시대와 지구촌 정의관 정립
서론
Ⅰ.영화매체로 본 야만의 시대
A. 영화의 존재론과 인식론
B. 영화 매체로 본 야만의 시대
Ⅱ.지구촌의 인권과 정의관
A. 정의로운 전쟁
B. 분배의 정의 실현
Ⅲ.결론
야만의 시대와 지구촌 정의관 정립
서론
Ⅰ. 영화매체로 본 야만의 시대
A. 영화의 존재론과 인식론
B. 영화매체로 본 야만의 시대
Ⅱ. 지구촌의 인권과 정의관
A. 정의로운 전쟁
B. 분배의 정의 실현
Ⅲ. 결론
서론
오늘날 지구촌 사회는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영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의존도가 심화(深化)되고 있다. 이런 상호의존도 심화는 지구촌 사회를 보다 더 풍요롭게 만드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지구촌 사회에서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 분쟁 문제 등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야기하는 측면 또한 있다. 그런데, 현재 지구촌 사회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할만한 지구촌 정의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은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深化)시킬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지구촌 사회에 공멸의 위기감마저 고조시키고 있다.
본 논문은 인권의 기본개념들을 영화라는 매체(媒體)에 노출시켜 지구촌 사회의 공정한 관점에서 중립적으로 바르게 재해석함으로써, 문제점들을 극복하여 정당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작동가능한 지구촌 정의(正義)관을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한다. 다양한 국가들은 지구촌 정의관으로 자유권과 생명권 존중이라는 최소 인권 원칙에 합의한다.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에 갖는 권리’인 최소 인권 원칙은 지구촌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주체들인 시민의 정체(正體)성과 차이를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공통(共通)분모에서 출발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국가들에 의해 정당화(正當化)될 수 있는 최소 인권 원칙은 다음의 전쟁과 빈곤이 갖는 두 가지 사례 적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구촌 문제들에 실질적인 영향력 또한 행사할 수 있는 현실(現實)성 있는 정의(正義)관이다. 지구촌 정의관인 인권 원칙은 국가들이 지구촌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지구촌 사회의 평화(平和)를 도모하면서도, 인권 보호를 위해 인권 원칙에 입각한 ‘정의로운 전쟁’을 허용하기 때문에 지구촌 사회의 인권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영향력(影響力)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지구촌 정의관은 인권 원칙(原則)에 입각한 분배 원칙을 제시하는데, 이런 분배(分配) 원칙(原則)은 지구촌 정의관인 인권이 보장될 때까지 재분배한다는 차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구촌 기아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보장(保障)할 수 있다.
Ⅰ. 영화 매체로 본 야만의 시대
20세기 이후 인류의 최대 가치는 평화일 것이다. 평화를 위한 국제적 약속과 공동의 행동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전 세계가 단 하루라도 전쟁 없는 평화의 날은 없었다. 전쟁은 인간의 모든 권리를 잿더미로 만드는 인권의 무덤이다. 전쟁이 하루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상 어딘가에는 인권의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9 · 11 테러 이후 가장 많은 상영목록을 지닌 작품은 단연 ‘이라크 전쟁’ 영화가 아닌가 한다. (제임스 롱리/2007/미국/다큐/94분)는 짧은 외신으로 파악할 수 없는 전쟁 이후의 이라크를 알려주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이라크에 선사한 건 죽음, 가난, 인간성에 대한 배반 그리고 종파로 인한 분열이다. 는 아버지를 잃은 11살의 소년가장, 중산층의 대학생을 통해 전쟁이 남긴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특히 터키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등이 꺾여 살고 있는 유랑민족 쿠르드 인들은 이라크 북부를 차지했다. 그들에게 생존과 전쟁은 그리고 미국에 대해 묻고 있다.
A. 영화의 존재론과 인식론
예술작품의 존재적 위치에 대한 입장의 불일치(不一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된다. 플라톤의 예술작품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대상을 그대로 복사한데 불과한데, 자연은 다시 신의 마음속에 있는 성스러운 형체(形體)나 정신의 복사품에 불과하므로 결국 예술작품은 열등한 존재(存在)로서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현실에의 접근(接近)을 주지 못 한다고 보았다. 더구나 예술작품은 인간의 이성적 기능보다는 감정(感情)에 호소하기 때문에 인간이 이성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는데 방해요소가 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이런 예술관적 맥락(脈絡)에서 본다면 영화는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한 열등(劣等)한 차원의 복사품으로 예술적 가치가 결여된 단순한 놀이 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성립될 수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은 예술작품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혼돈적 요소들을 유기체적 총체로 조직화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인식능력을 증가시키고 사람들에게 존재에 대한 보다 더 완벽한 인지력을 준다는 입장에 서있다. 영화와 현실간의 관계를 미학적 차원에서 해석하려했던 고전 영화이론가들은 이런 아리스토렐레스의 예술관점에서부터 자신들의 이론을 시작하고 있다. 김은주, “고전영화이론의 이해와 평가” (문학석사학위논문, 동국대학교 대학원, 1989) 1.
우리가 ‘움직임의 인식’이나 ‘깊이감의 인식’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실제 세계(世界)가 아닌 환상(그림자)을 실제로 믿고 사는 우민에 대한 비난을 신랄하게 하였다. 영화관의 동굴같이 컴컴한 공간이나 빛이 모여지는 스크린이라는 한 장소를 향해 모두 머리가 향하고 있다는 외형적 유사성이 영화와 동굴의 환상을 동일시하려는 비판적 경향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동굴인 처럼 머리가 고정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관객은 머리와 눈을 모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이며, 영화관 밖의 세계(世界)에서 살고 있는 존재(存在)로서 현실세계와 영화 속의 세계를 엄격히 구별할 수 있는 지적존재이다. 그들은 영화 속의 세계를 보고 있지만 영화관 밖의 실제세계를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결코 속지 않는다. 관객들은(영상속의) 깊이감에 대해 완벽하게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진짜 깊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문제는 또한 칸트가 자신의 철학 속에서 설명해 보려 노력했던 ‘지식’(知識)과 ‘사실(事實)’의 관계(關係)에 대한 해답을 주기도 한다. 즉 영상속의 세계는 2차원의 세계이며 정사진의 프레임으로 단절된 불완전한 세계라는 것을 이미 확실한 지식으로 알고 있는 관객들의 눈에 비치는 움직임이 있고 3차원의 깊이를 지닌 영상세계라는 결과적 사실 간의 갈등을 우리는 관객의 정신작용이 라는 독특한 내적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예술적체험이란 중간과정을 설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단절’과 ‘결여’의 세례는 관객의 내적 경험이란 정신작용을 통해서 비로소 완결(完結)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Ibid.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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